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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디자인] 후미진 학교 구석구석·스산한 골목길 여기저기… '범죄 예방 디자인' 옷 입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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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디자인] 후미진 학교 구석구석·스산한 골목길 여기저기… '범죄 예방 디자인' 옷 입다

입력
2012.10.24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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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진중학교의 실험

사각지대에 샌드백·암벽장·댄스무대

CCTV로 현관·교무실 방송 '소통의장'

왕따 등 학교폭력 해결 시도

마포구 염리동의 변신

인적 드문 곳 연결 산책코스 '소금길' 조성

전봇대에 비상벨… 지킴이 집엔 노란색 대문

주민들이 직접 참여 안전한 거리로 변신

아파트 고지서 새 디자인

도표·색깔 활용해 에너지 사용량 한눈에

방배동 600가구 시범실시 에너지 10% 절감

에너지관리공단등새디자인 수정^보완중

최근 2년간 서비스디자인 관심

대학원 관련과정 30여개… 기업도 전담조직

디자인진흥원 "디지털과 융합땐 신성장동력"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 자리한 공진중학교, 이 학교엔 다른 학교에서 볼 수 없는 광경이 쉬는 시간마다 펼쳐진다. 요즘 청소년들이 시간만 나면 휴대폰을 꺼내 들거나 친구들과 구석에서 모여 춤연습을 하는 것과 달리 이 학교 아이들은 운동장의 구석진 곳으로 달려간다. 교사들의 눈을 피해 담배를 피우거나 때론 괴롭힘을 당하기도 했던 외지고 어둑한 장소다. 그러나 그곳은 이제 아이들이나 즐겨 찾는 핫스팟이 됐다.

한 무리의 아이들이 '꿈의 무대(dream stage)'에서 싸이의 '강남스타일'음악에 맞춰 말춤을 추면 무대 아래 아이들은 박수를 치며 함께 즐긴다. 암벽장을 조성한 또 다른 곳이나, 샌드백이 설치된 '스트레스 존'에는 아이들이 줄지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이곳이 여느 놀이 공간과 다른 점은 교내 CCTV가 설치될 만큼 외진 곳에 조성됐다는 점이다. 이들 현장은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현관과 교무실에 있는 모니터로 실시간으로 확인된다.

후미진 공간에 설치된 CCTV는 더 이상 감시용이 아닌 일종의 방송용 카메라가 됐다. CCTV에 대한 역발상인 셈이다. 이들 공간에서 종종 일어나던 사고를 막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혼자 놀기에 익숙한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친구들과 어울린다는 게 의외의 소득이다.

올해 6월부터 공진중학교에서 펼쳐지는 풍경은 서울시에서 시행하는 '범죄 예방 디자인 프로젝트' 시범 사업의 일환이다. 학교폭력, 왕따, 자살 등 늘어나는 청소년 문제를 강력한 법률과 감시 강화가 아니라 디자인으로 해결하려는 데서 출발했다. 이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구현한 곳은 서비스디자인 전문기업 팀인터페이스와 브랜드·커뮤니케이션 전문기업 샘파트너스. 팀인터페이스의 이성혜 대표는 "초기 리서치를 진행하면서 놀란 점은 아이들의 우울증 지수가 높다는 점이었다"면서 "가장 먼저 진행한 것은 아이들 마음을 다독이는 미술, 심리극, 시 등을 통한 심리 치료였다"고 말했다. 이러한 과정은 바로 서비스디자인의 일환이다.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놀이뿐 아니라 암벽 꼭대기에 종을 매달아 등반 후 성취감과 자존감을 느낄 수 있게 세심하게 배려한 점도 눈에 띈다.

범죄를 예방하는 디자인은 환경 설계를 통한 범죄 예방을 뜻하는 셉테드(CEPTED· 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에서 벤치마킹을 하기도 한다. 셉테드는 건축물 설계 단계에서 범죄를 차단하는 안전 시설 고안을 일컫는데, 투명문의 엘리베이터, 요철이 있는 가스배관 등이 그 예다. 그러나 셉테드가 주로 도시 설계 단계에서 이뤄진다면, 이번 '범죄 예방 디자인 프로젝트'는 완전히 조성된 도시 안에서 해결 방안을 찾는 과정이기 때문에 셉테드를 보완할 수 있는 방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는 마포구 염리동에서 시범적으로 운영하는'범죄 예방 디자인 프로젝트'는 눈길을 끈다. 과거 마포나루를 거점으로 한 소금창고가 자리해 염리동(鹽里洞)이란 지명을 얻은 이곳은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된 후 5년 간의 개발 지연으로 원주민보다는 외지인들이 크게 늘었다. 굽이굽이 이어진 좁다란 골목길에 어둠이 깔리면 주민들이 집밖에 나오길 꺼릴 정도로 강력범죄가 잦았던 지역이기도 하다. 녹지 공간이나 놀이터도 없어 낮에도 인적이 드문데다 주민들은 잦은 범죄로 낯선 이들을 경계한다. 이곳의 서비스디자인은 주민들이 범죄 예방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점을 범죄자에게 노출시켜 범죄 심리를 위축시키고, 주민들이 갖는 막연한 두려움을 줄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는 주민들이 운동이나 다양한 야외활동을 함으로써 범죄자에 대한 자연스러운 감시가 이루어지게 함으로써 가능하다.

프로젝트를 진행한 디자이너들은 주민들이 심리적 두려움을 느끼는 장소를 체크하게 하고, 그 지점을 연결해 1.7km의 산책코스를 만들었다. 전문 트레이너의 자문을 통해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적절히 섞여 운동 효과를 높인 이 길은 지명에서 착안해 '소금길'이라 명명했다. 길을 잃기 쉬운 골목길 전봇대에는 번호표를 붙여 자신이 있는 위치를 확인할 수 있게 하고, 전봇대 곳곳에 비상벨을 설치해 주민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게 했다. '소금길'에는 6개의 노란색 대문이 있는데, 동네 '지킴이'의 집으로, 외부에 설치된 감시 카메라를 집안에서 실시간 모니터링하며 외부에 문제가 있을 경우 빠르게 대처할 수 있게 했다. 골목길 전봇대 69개에는 LED조명을 달아 밤거리를 걸을 때 심리적 안정감을 느낄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서비스라도 주민들이 꾸준히 관리하고 이용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서비스디자인을 할 때 지속가능성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하는 이유다. 주민들의 꾸준한 참여와 관리는 지역 커뮤니티의 활성 정도에 따라 결정되는데, 이를 위해 서울시는 내년 1월, 소금길의 거점인 '소금나루'를 완공할 예정이다. 카페와 마을문고, 사랑방 등의 편의시설과 24시간 초소 기능을 겸하는 이곳에 주민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며 원활한 소통을 도울 것으로 보인다.

한국디자인진흥원은 지난해부터 이미 공공부문에서 크고 작은 서비스디자인을 구현해왔는데, 지난해 1~3월 디자인지식산업포럼과 공동으로 진행한 아파트 고지서 리디자인(re-design)을 통한 '에너지 절약 프로젝트'가 그 중 하나다. 보통 아파트 고지서는 항목과 금액만 적혀 나열되어 있다. 이를 통해 전기사용량의 많고 적음을 체감하기란 쉽지 않다는 문제점을 발견한 한국디자인진흥원과 디자인지식산업포럼은 에너지 사용량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도표와 색깔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전기세라는 용어를 전기 에너지 사용료로 바꾸고, 이웃집 평균 사용량과 우리집 평균 사용량, 이달 사용량과 전년도 당월 사용량 등을 나란히 표기해 전기 에너지 사용 변화를 확인할 수 있게 했다.

또 전기사용량 누진세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전기사용량을 10% 줄이면 비용을 23% 절감할 수 있다는 정보를 제공하고, 사용량에 따라 초록(적음), 노랑(보통), 빨강(많음)으로 색칠된 고지서를 발급했다. 방배동 래미안 아파트의 600가구를 대상으로 시범 실시한 결과 고지서 디자인 변경만을 통해 무려 10%의 에너지 절감 효과를 거뒀다. 현재 새로운 고지서 디자인은 에너지관리공단과 디자인지식산업포럼이 수정·보완 중이다.

최근 2년간 국내에서 서비스디자인에 대한 관심은 공공, 민간, 학계 등을 불문하고 크게 늘어났다. 실제 공공, 민간부문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뿐 아니라 삼성그룹에서는 올해 전문적인 서비스디자인 조직을 꾸렸고, 1, 2년 사이 국내 대학원에도 서비스디자인 과정이 30여 개가 생겨났다.

한국디자인진흥원도 올해 안에 서비스디자인팀이 구성돼 서비스디자인 전문기업 지원과 양성에 힘쓸 예정이다. 한국디자인진흥원 이태용 원장은 "디지털과 서비스디자인을 융합하는데 초점을 맞출 예정이다. 디지털 산업과 서비스 산업에 기여할 수 있는 디자인이라면 국가적으로도 신 성장동력이 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공공부문 사업을 통해 디자인 전문기업들에 비전을 제시하고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디자인진흥원 윤성원 전략연구팀 과장은 "영국 디자인 카운슬에서 진행된 'Dott07'은 정부가 110억의 예산을 투입해 6개의 서비스디자인 전문기업이 참여한 프로젝트로, 그때 참여한 리브워크, 엔진, 씽크 퍼블릭 등이 세계적인 서비스디자인 전문기업으로 성장했다는 점을 상기시킬 필요가 있다"며 정부차원에서의 공공부문 프로젝트 투자를 통한 서비스디자인 역량강화를 강조했다.

이인선기자 kelly@hk.co.kr

공동기획 : 한국일보·한국디자인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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