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하원이 국가반역죄의 기준을 대폭 강화한 법안을 23일 통과시켰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집권 이후 야권과 언론, 시민단체를 옥죄는 법안이 속속 통과하면서 러시아 인권 상황이 구 소련 시절로 퇴보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수정 법안은 외국 정부에 국가 기밀을 누설하는 행위는 물론, 비정부기구(NGO)에 자문을 하거나 재정지원을 하는 것도 반역죄로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법안은 ‘국가 안보에 직접적인 위해를 끼쳤을 경우’로 처벌 범위를 한정하고 있지만 기준이 모호해 남용될 가능성이 크다.
기소 절차도 줄였다. 종전에는 검찰이 반역죄 용의자를 기소하려면 ‘국가 안보를 해치려는 적대적 의도가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지만 이제는 국가 안보에 위협이 가해졌다는 증거만 제시해도 기소가 가능하다. 또 기밀을 누설한 사람뿐 아니라 기밀을 전해 듣거나 전달한 자, 공개한 자도 처벌된다.
법안이 발효되면 유럽인권재판소에 국내 인권침해 사례를 알리거나 해외 언론에 국내 선거부정에 관한 자료를 제공하는 행위가 모두 반역죄로 간주된다. 법안은 조만간 상원을 무난히 통과해 푸틴의 서명을 거쳐 발효될 것으로 보인다.
야권과 인권단체는 “언론과 민간기구의 발을 묶는 행위”라며 격렬히 반발했다. 야당인 정의러시아당은 “반역의 기준을 이렇게 광범위하게 정의한다는 것은 외국인과 접촉하는 어떤 러시아인도 반역자로 몰릴 수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법안은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집권하던 2008년 의회에 제출된 이후 계류돼 있다가 4월 푸틴이 당선되면서 다시 힘을 얻어 이번에 하원을 통과했다. 앞서 의회는 반정부 여론을 형성하는 NGO들을 외국 기관으로 지정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고 러시아 인권 활동을 지원해온 미국 국제개발처(USAID)를 철수시켰다. 불법집회 벌금을 150배 인상하고 야권 지도자들을 줄줄이 형사 입건한 것도 모두 푸틴 집권 후 6개월도 안돼 일어났다. 허핑턴포스트는 한 인권 운동가를 인용해 “최근 러시아 정부가 고립주의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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