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테러 발생 11년을 맞은 11일 미 언론인 쿠르트 아이헨발트가 신간 <500일: 테러전쟁의 비밀과 거짓에서 조지 W 부시 정부의 태만이 테러를 자초했다며 관련 증거를 폭로했다.
그가 뉴욕타임스에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9ㆍ11 이전 정보당국은 최소 6차례 오사마 빈 라덴과 그의 테러조직 알 카에다의 테러 정보를 보고했다. 하지만 부시는 임박한 테러가 아닌 알 카에다의 역사에만 흥미를 보였다. 국방부에 포진한 신보수주의자(네오콘)들은 백악관에 중앙정보국(CIA)의 가짜 정보를 믿지 말라고 했다.
2001년 8월6일 백악관에서 대통령 브리핑이 열렸다. 일일정보보고(PDB)의 제목은 '빈 라덴, 미국 공격 결정'. 하지만 테러가 임박했다는 이 놀랄만한 정보는 무시됐다. 그리고 5주 뒤 약 3,000명의 목숨을 앗아간 9ㆍ11테러가 발생했다. 알 카에다 공격의 경고음이 울린 것은 2001년 봄부터였다. 그러나 부시 정부는 음모론이 나올 만큼 알려진 것 이상으로 태만했다. PDB를 작성한 CIA는 5월1일 '일단의 그룹이 미국에 들어와 있다', 6월22일 '시간이 유동적이나 테러가 임박했다'고 잇따라 보고했다. 백악관은 이를 엄포로 간주했고, 네오콘은 CIA가 속고 있다고 주장했다. 빈 라덴이 미국의 관심을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으로부터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가짜 공격 계획을 세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정보당국은 이슬람 원리주의자(빈 라덴)가 세속정권(후세인)과 음모를 꾸민다는 건 우스갯소리라고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6월29일 빈 라덴과 연결된 정보원을 인용해 머지 않아 많은 희생자와 극적인 결과를 가져올 테러공격을 경고했고, 7월1일 그 작전이 연기됐으나 조만간 일어날 것이라고 보고했다. 그래도 백악관이 움직이지 않자 CIA 대테러센터 그룹은 회의를 열어 대책을 논의했다. 한 직원은 테러 발생에 따른 책임 추궁을 피하기 위해 전근을 요청하자고 제안했다. 알 카에다와 연결된 체첸 반군지도자가 '곧 대형 뉴스가 터진다'고 한 말도 48시간 안에 백악관에 전달됐으나 경고의 종은 울리지 않았다. 7월24일 부시는 테러 임박 보고를 받고도 테러가 아니라 알 카에다의 역사와 목표에 대한 질문만 했다. CIA는 최종적으로 8월6일 빈 라덴의 미국 공격 계획을 보고하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9ㆍ11 이후 부시는 정보당국이 테러의 시기와 장소를 지목하지 못했다며 책임을 떠넘겼다. 그러나 부시가 경고를 무시하지 않고 경계 수위를 높였더라면 9ㆍ11은 피할 수 있었다고 아이헨발트는 결론지었다.
워싱턴=이태규 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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