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크리스토퍼 스티븐스 리비아 주재 미국 대사와 외교관 3명 등 4명의 목숨을 앗아간 리비아의 반미 시위는 총과 수류탄 등 무기가 동원돼 격렬하게 전개됐다. 이날 이집트에서도 수천명이 카이로의 미국 대사관에 난입, 성조기를 찢는 등의 시위를 했다.
AF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시위대 수십명이 무장한 채 리비아 제2 도시 벵가지의 미 영사관으로 몰려들었다. 이들은 공중에 총을 난사하고 사제 폭탄을 던졌다. 영사관 경비 병력이 시위대에게 발포했지만 로켓 추진 수류탄이 날아드는 상황이어서 역부족이었다. 경비 병력과 시위대의 충돌로 외교관 1명이 총에 맞아 죽고 직원 1명은 손에 총상을 입었다. 시위대가 영사관 구내로 진입한 후 건물은 곧바로 불길에 휩싸였다. 난입 과정에서 시위대 4명과 영사관 경비를 담당한 리비아군 5명도 사망했다.
리비아 최고치안위원회의 압델 모넨 알 후르 대변인은 당시 상황에 대해 "충돌이 격렬했다"며 "경비 병력이 영사관 건물을 둘러쌌으며 주변 도로는 폐쇄됐다"고 증언했다. 한 목격자는 "이슬람 강경주의자인 살라피스트도 시위대에 포함돼 있었다"고 말했다.
스티븐스 대사는 수도 트리폴리의 미 대사관에 있다가 피습 소식을 듣고 직원들의 대피를 돕기 위해 급히 벵가지로 갔다가 변을 당했다. 그와 3명의 외교관은 차에 있다가 로켓 추진 수류탄 공격을 받았고 화염에 휩싸인 차 안에서 질식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벵가지 영사관이 공습을 받기 수시간 전에는 이집트 카이로의 미국 대사관이 공격을 받았다. 살라피스트가 중심이 된 3,000여명의 시위대가 카이로 시내에서 대사관으로 행진하며 시위했고 이중 20여명이 벽을 넘어 구내에 난입했다. 이들은 9·11 테러 11주기를 맞아 조기 게양돼 있던 성조기를 끌어내려 찢고 밟은 후 불에 태웠다. 성조기 자리에는 '알라는 유일신이고 무함마드는 신의 메신저'라고 적은 검은 깃발을 올렸다. 이슬람 강경주의자들이 상징적으로 사용하는 깃발이다. 일부 시위대는 9·11 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알카에다 전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의 이름을 외쳤다. 경비 병력은 이들을 향해 경고 사격을 했다.
시위에 앞서 카이로의 미국 대사관과 이스라엘 대사관에는 협박 편지가 배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대사관 직원들은 일찍 퇴근해 시위대가 대사관에 진입했을 때는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이집트 당국은 대사관에 추가 병력을 배치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이슬람 선지자 무함마드를 모욕적으로 묘사한 미국 영화 '순진한 무슬림'이 도화선이 된 이번 사건은 2005년 덴마크의 한 언론사가 무함마드를 폭탄테러범으로 묘사한 캐리커처를 게재했다가 여러 이슬람 국가에서 항의 폭동이 이어진 일을 떠올리게 한다. '순진한 무슬림'이 당시 캐리커처보다 수위가 높은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파급이 더 클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반미시위는 앞으로도 계속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집트 집권 무슬림형제단은 '순진한 무슬림' 영화에 대해 미국에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무슬림형제단은 14일 전국 주요 사원에서 평화적 항의 시위를 할 것을 촉구했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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