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대 '열공 선물세트' 논란
10만원 상당 물품 증정… 학생들 줄서기 경쟁
"기업 홍보장 활용" 우려
대학들에 수십억 협찬… "상업화 경계해야" 지적
23일 서울 명륜동 성균관대 인문사회과학캠퍼스 금잔디광장. 중간고사 시험준비에 한창일 학생들 사이에서 때아닌 줄서기 경쟁이 벌어졌다. 학교 측이 대학생 어플리케이션 업체 원캠퍼스와 공동으로 준비한 1,000여명 분의 중간고사 '열공 선물세트'를 받기 위한 것. 검은색 손가방에 담긴 '열공 선물세트'는 삼각김밥과 음료수, 생수, 캔커피뿐 아니라 샴푸컨디셔너, 화장품, 여성용품, 비타민제, 가방, 의류, 인터넷 강좌 할인쿠폰 등 10만원 상당의 물품이 들어있다. 선물 제공에 참여한 기업만 15곳이 넘는다.
행사시작 시간은 낮 12시30분이지만 중간고사 기간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학생들은 아침 일찍부터 줄을 섰다. 김모(경영4ㆍ여)씨는 "우리학교 재학생이기도 한 배우 주원과 유이가 물품을 나눠준다고 해 10시 10분부터 줄을 섰다"며 "중간고사 기간이긴 하지만, 선물을 받는 거니까 나쁠 게 없다"고 말했다.
이번 행사는 원캠퍼스가 학교 측과 총학생회에 제안해 마련했다. 원캠퍼스는 대학 중간고사가 몰려있는 18일부터 24일까지 서울시내 15개 대학에서 비슷한 간식 선물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총 17개 기업이 20억원 상당의 물품을 협찬했다. 박수왕 원캠퍼스 대표는 "그 동안 총학생회도 기업의 협찬을 받아 간식을 나눠줬다"며 "우리가 일을 대신 맡아 하면서 학생들에게 돌아가는 혜택도 늘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행사에 대해 뒷말이 많다. 대학에서 외부업체 협찬을 받아 고가의 선물을 나눠 주는 것이나 시험 기간을 상업적 이벤트로 활용하는 게 부적절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김모(사회과학계열 1)씨는 "간식 이벤트 행사가 있다는 문자가 1주일 전부터 수시로 왔다"며 "샴푸나 여성용품 등을 나눠주는 일이 중간고사 기간 동안 열심히 공부하는 것과 어떤 연관이 있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성대 고위관계자는 "행사를 기획한 원캠퍼스 대표는 성대 경제학과 4학년에 재학중인 학생"이라며 "상업적 행사라기 보다는 기업 등에 진출한 선배와 학생들이 함께 하는 나눔의 자리로 보는 게 맞다"고 말했다. 성균관대 총학생회 관계자는 "학생회 예산이 제한된 상황에서 업체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사실 상당수 대학들은 소소한 간식 제공으로 중간고사를 준비하는 학생들을 응원하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여대는 지난해 6월 도입한 '지렁이를 이용한 음식폐기물 자원화 순환시스템'으로 교비를 아껴 지난 18일 중간고사를 맞은 학생들에게 빵과 커피 우유 등 간식을 제공했다. 경희대는 중간고사 기간 동안 총학생회 집행부 소속 학생들이 떡볶이, 순대 등 간식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500원에 판매한 수익금으로 기부활동을 하고 있다. 총장과 교수가 직접 발품을 파는 대학도 있다. 덕성여대는 시험기간 동안 총장과 교수들이 나서 학생식당에서 아침 영양죽을 무료로 제공하는 전통을 6년째 이어오고 있다.
문화평론가 이택광 경희대 영미문학과 교수는 "영ㆍ미권의 경우 대학 내 신용카드 발급 문제도 큰 사회적 이슈가 될 정도로 대학의 상업화를 경계한다"며 "최근 들어 대학이 기업의 마케팅 장소로 변질되는 경우가 잦고 대학문화의 교육적 효과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이동현기자 na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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