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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문인 묘역의 아버지께 이 시집 바치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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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문인 묘역의 아버지께 이 시집 바치고파"

입력
2012.10.23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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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을 방문하게 되면 시집 들고 아버지 묘역에 찾아가고 싶어요. 이 인터뷰가 나가면 놀랄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그만큼 말하지 않고 지냈으니까요."

23일 윤화진(76) 성남예총 상임고문에게 시집 를 낸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아시아개발은행 수석경제분석가, 청와대 금융개혁위원회 책임위원 등을 지낸 그는 국제금융전문가로 통한다. 한평생 경제인으로 살던 그가 시를 쓴 건 아시아개발은행에 일할 때 차곡차곡 읽어둔 영시(英詩) 영향이 컸다. "그때 주로 하는 일이 원조하는 나라를 여행하는 일이었죠. 책 읽고, 작문하고 시도 썼고, 불문학 전공한 집사람 만난 것도 그 무렵이었어요."

하지만 취미삼아 시를 썼던 그가 본격적으로 시 공부를 하고, 시집을 내게 된 건 부친의 영향이 컸다. 윤 고문의 부친은 한국의 카프(KAPFㆍ조선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문학을 주도하다 월북한 소설가 겸 문학평론가 윤기정(1903~55)씨. 그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동네에서 소문난 효자, 순박하고 정의로운 사람"이었다. "할머니 말씀에 의하면 우리집 사랑방에 모인 그 사람들(카프 문인들)이 다 식객이었다고 해요. 31년에 카프 문인 80명이 다 잡혀 갔는데, 2년 복역할 동안 80명 변호사 비용을 우리 할아버지가 다 냈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그런데도 아버지가 제일 오래 복역하셨죠."

작가 윤기정은 31년과 34년 두 차례의 카프 사건으로 검거됐다가 각각 기소유예와 집행유예로 석방됐고, 광복 후 송영·한설야·이기영 주도의 카프의 서기장으로 활동하다가 월북했다. 한평생 이 사연을 숨기고 살았던 윤 고문은 2003년 대산문화재단, 한국작가회의가 주최한 '탄생100주년 문학인 기념 문학제' 기사를 보고 재단에 연락해 아버지의 월북 이후 사망 소식을 확인했다. 절절한 심정은 그의 시 '아버지', '어느 귀향' 등에 잘 나와있다.

'결코 돌아가지 못할 고향길로/ 내 영혼을 업고서 돌아 간다/ 말로 다 못한 사연들 시 구절 사이사이 끼어/ 내 사랑하던 고향으로 띄워 보내고/ 내 슬픈 영혼이 고향에 이르지 못하면/ 내 안부만이라도 전하게 해주지'('어느 귀향' 의 일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시는 안 보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조금 이해가 가요. 자신의 이상, 사상에 모든 걸 바칠 수 있는 것은 영웅적인 생각이 없으면 못하죠. 자기 주장, 생각을 갖고 살 수 있다면 그런 사람은 위대하다고 봐요."

윤 고문은 두 가지 바람이 있다. 본격적으로 시 공부를 해 훌륭한 시를 쓰는 것과 시집을 들고 북녘 부친의 묘역을 찾는 것이다. "북한 문인 묘역이 있다고 들었어요. 아버지 유품이 문인박물관에 전시돼있다는 소식도 들었고요. 한국작가협회 문인으로 등록해 남북작가교류 때 문인 묘역을 찾아가 아버지를 뵙고 싶습니다." 시집은 내년 초 영역돼 뉴욕에서도 출간될 예정이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김정은(숙명여대 정보방송학과 3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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