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화가는 영원한 화가, 은퇴는 없다.
대구ㆍ경북지역 현역 최고 원로화가인 신석필(92)화백의 개인전이 29일까지 봉산문화거리 예송갤러리에서 열린다. 1953년 부산에서 첫 개인전을 연 뒤 55번째로 신 화백은 실질적인 작품활동을 하는 화가로서는 대구ㆍ경북 최고령 작가이다. 동시에 지역에서 활동하는 대표적인 월남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1950년 말 월남 후 지금까지 국내 화단 내 어떤 유파에 속하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둔 채 독자적인 세계를 일궈오면서 구상과 추상화의 중간인 신구상미술계의 대표적인 화가다.
이번 개인전 출품작은 22점으로 모두 올해 그린 작품이다. 나이는 정말 숫자에 불과함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그는 "습관이 돼 붓을 안 잡으면 안 된다. 작품활동을 하려면 영감이 떠올라야 하는데, 아직도 이북에서 피난 온 기억들이 영감의 원천으로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수년 전까지는 1주일에 한 번 야외스케치를 하고 나머지를 작업실에서 완성했다. 요즘은 마음으로 그린다고 한다.
그는 이번 전시회에서 '여인'이 가진 특이한 표정을 통해 인간의 다양한 모습과 희로애락을 전달하고 있다. 22점 중 7편이 여인의 인물상이다. 가면 쓴 여인의 모습을 그린 '가면'은 모두가 가면을 쓴 세상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 여인도 가면을 쓸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그는 "그림 그리는 것 자체가 즐겁고, 안 그리면 몸이 불편해진다. 이번에 그림을 안 그리면 몸이 약해진다는 것을 느꼈다"라며 무병장수의 비결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은 쉼 없이 하고, 할 수 있다는 것임을 입증했다.
월남작가이기 때문인지 그의 작품세계는 북한 고향에 대한 향수와 추억, 어린 시절에 겪었던 정서가 화폭에 고스란히 배어 있다.
평양국립미술대학 조교수로 재직하다 1ㆍ4후퇴 직전 월남한 그는 "공산주의 사회에서 화가생활은 마음대로 그림을 그릴 수 없어 답답했다. 주제도 색감도 정해져 있었다. 좀 더 자유로운 환경에서 나만의 예술세계를 개척하고 싶었는데, 전쟁이 터졌고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남쪽으로 향했다"고 말했다.
월남 후 이중섭 최영림 박항섭 등 12명과 함께 월남화가단을 결성했고, 1953년 부산에서 첫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오랫동안 어두운 시대의 그늘과 이별을 표현하다 1970년대 들어 밝아져 수년 전까지는 원색과 보색의 화려한 결합을 강조해 왔으며, 이번 전시회에서는 중간색을 많이 쓰는 등 또 한번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신 화백은 "나이가 들수록 더 좋은 작품이 나오는 것 같고, 화가의 길을 정말 잘 선택한 것 같다"며 "죽는 그날까지 그림을 그리겠다"고 말했다.
신석필 화백은 1920년 황해도 봉산 사리원 출신으로 황해도립 해주미술학교를 졸업하고 평양국립미술대 조교수로 재직했다. 월남 후 월남화가단을 창단했고, 이상회 자유미협 신구상회 회원으로 활동했다. 1957년부터 20년간 대구남산여고 왜관 순심중고등학교 등에서 교편을 잡았고, 1975년부터 20년간 경북대와 영남대에 출강했다. 현재 국제아트클럽 COMET회원, 한국미술협회 고문 등으로 활동 중이며, 국전입선, 대구시문화상 수상, 금복예술문화상 수상, 대구미술대전 초대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정광진기자 kjche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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