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가 불법파견을 인정하고 모든 사내하청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는 한, 철탑에서 내려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출신 최병승(38)씨와 울산공장 비정규직지회 천의봉(31) 사무국장의 송전 철탑 농성(본보 19일자 10면)이 23일로 일주일째를 맞았다. 노동계는 대선을 앞두고 이번 사태를 크게 이슈화하려는 분위기인 반면 사측은 당장 농성을 풀게 할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어 사태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자칫 지난해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크레인 고공농성 사태처럼 큰 사회적 파장을 불러오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날 울산 북구 양정동 현대차 울산공장 명촌주차장 내 송전탑 주변엔 긴장감이 맴돌았다. 사내하청(비정규직) 노조가 사측과 경찰의 접근을 막는다며 철탑 밑에 설치한 천막은 강풍에 심하게 흔들렸다. 30여명의 사내 하청 해고자들은 고개를 들어 50m 높이의 송전탑 중간지점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최씨와 천씨의 안전을 살피느라 애를 태웠고, 경찰은 마찰을 피하기 위해 최소한의 인원으로 바짝 경계태세에 만전을 기하는 모습이었다.
농성장은 송전탑의 높이 20m 지점. 2cm 두께에 2㎡ 정도의 합판 위엔 천씨가, 그 아래 3m 지점엔 최씨가 각각 올라서 있었다. 지난해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고공농성을 벌인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크레인엔 조그만 조종실이 있어 그나마 몸을 이리저리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송전탑 농성장은 한 사람의 몸만 지탱하기에도 비좁은 공간이다.
최씨는 전날 한 라디오 방송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국정감사를 8년 동안 3번이나 했지만 어떤 것도 해결되지 않아 답답한 심정으로 이렇게 올라왔다"며 "사내하청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는다면 철탑에서 절대 내려가지 않을 것"고 장기전을 예고했다.
철탑 아래 상황은 더 긴박하게 돌아갔다. 울산ㆍ아산ㆍ전주공장 사내하청 조합원들은 26일 전면파업을 벌이기로 했다. 이들은 이날을 송전탑 아래로 집결하는'울산공장 포위의 날'로 선포했다. 특히 민주노총은 매일 밤 최씨 등을 지지하는 촛불집회를 철탑 아래에서 열고 있고, 노동ㆍ시민단체들은 한진중공업 크레인 투쟁 당시 가동한 '희망버스'를 다시 조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결국 최씨 등은 철탑에서 내려오려 해도 당분간 내려올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다.
트위터에서도 이들의 소식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방송인 김미화(@kimmiwha)씨는 "농성중인 최병승씨와 3번 인터뷰 했다. 어제는 철탑에 묶인 채 바람 속에서 전화연결을 했는데 목이 메어왔다"고 적었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양상은 과거 한진중공업 고공농성 때와는 사뭇 다르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진중공업의 경우 노사 당사자간의 직접적인 갈등이지만, 이번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의 철탑농성은 회사와 사내하청 노조간 갈등인 동시에 제3자 격인 정규직 노조의 이해와도 직결된 사안이라는 지적이다. 따라서 회사-노조-비정규직 노조 3자가 그 동안 문제 해결을 위해 특별협의를 해왔지만 이것이 오히려 실마리 찾기를 더 어렵게 만들었다.
3자 협의과정에서 정규직화 문제는 사측의 결단이 필요한 부분이지만 '폭(대상 인원 수)'은 정규직 노조의 이해와 직결돼 협상에 굴곡이 따를 수밖에 없다. 현재 노조의 현장 정서는 '비정규직 노조의 전원 정규직화'엔 반대하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지금처럼 현대차가 수출이 잘 돼야 특근 상황이 계속될 것이란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장래의 고용불안 상황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사측은 다소 유연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김억조 현대차 부회장은 14일 열린 국회 노동위 국정감사에서"이른 시일 내에 해소하려고 하지만 법적으로 시간이 많이 걸려 회사 차원에서 1차적으로 3,000명 정규직화 계획을 내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종래의 3,000명에서 '플러스 알파' 가능성을 내비친 것이다. 문제해결엔 3자 협의가 필수적이고 향후 논란을 없애기 위해 정규직화 대상 확정을 위한 절차도 뒤따라야 하는 등 현실적으로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사측으로서는"모든 사내하청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는 한, 철탑에서 내려가는 일은 없다"는 최씨를 설득해 내려오게 하는 방안을 당장 찾기가 어려워 보인다.
울산=목상균기자 sgm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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