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어 거세게 파도친다고 바다의 높이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가 대선 판세를 분석하면서 한 얘기다. "요즘 대선 후보 지지율 조사 결과가 왜 들쭉날쭉하고, 롤러코스터처럼 요동치는가"라고 물은 데 대한 답변이다. 실제 요즘 여론조사 결과는 유권자들을 혼란스럽게 했다. 같은 시점 조사인데도 A조사기관의 경우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안철수 무소속 후보,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의 양자 대결에서 앞섰으나, B기관 조사에서는 박 후보가 안 후보, 문 후보에게 밀렸다.
전문가들은 "이슈와 변수 등에 따라 지지율이 요동치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실제 세 후보의 기존 지지층 변화는 크지 않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가령 단기적 이슈에 따라 C후보의 지지율이 5%포인트 떨어진 조사 결과가 나왔다 해서 실제 지지층이 그만큼 빠져나갔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여론조사 응답률은 대체로 20%를 넘지 못하기 때문에 C후보에게 악재가 발생할 경우 지지층 일부가 조사에 응하지 않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한 전문가의 판세 읽기는 4∙11총선 결과 분석에서 시작된다. 총선 때 보수 정당(대다수 종교정당 포함)이 얻은 득표율 합계와 진보 정당이 얻은 득표율 합계가 거의 비슷하거나 보수 정당이 1% 가량 더 얻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총선은 두 진영을 적극 지지하는 유권자가 거의 다 참여한 '총동원 선거' 였기 때문에 당시 투표 성향이 8개월 뒤에 치러지는 대선까지 패키지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총선 결과로 대선 승부를 곧바로 예측할 수 없다. 왜냐하면 4 ∙11 총선 때 투표율은 54.3%에 그쳤지만 올해 대선 투표율은 총선 때보다 훨씬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14~19대 총선과 14~17대 대선을 비교하면 대선 투표율(평균 74.1%)이 총선 투표율(평균 59%)보다 평균 15.1%포인트 높았다. 또 한국일보가 지난 6월 전문가 30명을 대상으로 올 대선의 예상 투표율에 대해 질문한 결과 평균치는 68.1%로 집계됐다. 총선 투표율보다 13.8%포인트 높은 수치다. 지난 총선 때 투표자가 2,180만 명이었으므로 이번 대선 투표자는 580명 가량 더 많은 2,760만 명에 이르게 된다.
총선 투표자의 표심 변화는 크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대선에 새롭게 참여하는 유권자 580만명이 대선 승부의 결정적 변수가 될 수 있다. 스윙보터(swing voter∙상황과 이슈에 따라 표심이 바뀌는 부동층)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의 성향은 대부분 중도이다. 이들 중에는 젊은층이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에 새로운 투표층에선 진보 쪽이 약간 더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이번 대선에서는 야권 후보 단일화가 이뤄질 경우 1~2% 이내의 득표율 차이로 승패가 갈린다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박빙 상황에서 두 개의 변수에 주목하게 된다. 일단 보수와 진보 쪽의 군소 후보가 어느 정도 표를 잠식하느냐가 의외의 변수가 될 수 있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가 대선에서 완주할 것이냐, 보수 성향 후보가 별도로 출마하느냐 여부가 당락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더 중요한 변수는 새로 투표에 참여하는 유권자층의 표심이 어떤 비율로 나뉘느냐 하는 점이다. 이들의 마음을 잡으려면 후보들은 이념을 떠나 상식과 원칙에 맞는 행동을 해야 한다. 또 시대정신을 담은 비전과 피부에 와 닿는 정책을 제시하며 희망을 보여줘야 한다. 그러나 아직 세 후보는 스윙보터의 마음에 다가가지 못했다. 정수장학회가 강탈됐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분명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는 박 후보의 태도는 상식에 맞지 않는 처사다. 정권 교체를 외치지만 알맹이 있는 청사진을 내놓지 못한 문 후보와 안 후보도 희망을 보여주지 못했다. "바다의 높이가 쉽게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밀물이냐 썰물이냐에 따라 차이가 크다"는 얘기도 있다. 대선 투표일에 밀물 상황을 맞으려면 스윙보터의 마음을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게 온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는 것이다.
김광덕 정치부장 kd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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