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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움과 채움의 역설… "영웅이 되기도, 바보가 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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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움과 채움의 역설… "영웅이 되기도, 바보가 되기도"

입력
2012.10.23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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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중하고 거대한 '동굴'(cave, 2012) 하나가 전시장 한편을 채웠다. 붉은 녹이 흘러내릴 듯 뒤덮인 타원형의 쇳덩어리. 지름 8미터, 무게 15톤에 이르는 덩어리의 위쪽엔 거대한 구멍이 뚫렸다. 그 안을 가득 채운 것은 끝을 알 수 없는 어둠이다. 경이로움과 긴장감으로 관객을 압도하는 동굴 속에서 느껴지는 것은 다름 아닌 어머니 자궁의 아늑함 혹은 끝없는 고요함이다. 작가 아니쉬 카푸어의 말대로 그것은 "텅 빈 어두운 공간이 아니라 어둠으로 가득 찬 공간"인 것이다.

세계 미술계가 주목하는 조각가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58)의 국내 첫 대규모 전시가 25일부터 2013년 1월 27일까지 서울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열린다. 인도 뭄바이 태생으로 베니스 비엔날레 영국관 작가 선정(1990), 터너상을 수상(1991)한 영국의 대표 작가이다. 올해에는 런던 올림픽 기념 조형물 '궤도(Orbit)' 등을 제작하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는 1970년대 말 힌두 사원 의식에 사용되는 원색의 물감가루 더미에서 영감을 얻은 안료 작업부터 조각 내부의 빈 공간을 새롭게 인식시키며 비움과 채움의 역설을 보여 주는 보이드(Void) 시리즈, 대형 스테인리스 조각 등 최근작까지 주요 작품 18점이 전시된다.

동서양의 사상과 문화를 아우르며 명상적이며 시적인 동시에 종교적인 작품을 30여 년간 이어온 카푸어가 23일 내한했다. "인간은 종교적인 존재라는 말이 있지요. 여기서 종교는 흔히 말하는 기독교나 불교가 아니라 '인간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와 같은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저의 작품이 종교적으로 비춰지는 것은 이처럼 시공을 뛰어넘는 보편적이고 원천적인 물음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의 작품은 기본적으로 조각의 형태를 보이지만 성격은 회화, 조각, 건축을 넘나든다. 실제로 거대한 구멍을 뚫은 땅바닥이나 건물 한쪽 벽면에 안료를 칠해 거대한 모노크롬 회화처럼 보이게 하거나 지나는 발길을 붙잡는 거대한 규모의 '건축적인 조각'은 그의 작품의 특징이다.

'건축적 조각'을 위해 그가 1995년부터 즐겨 사용하는 재료는 거울처럼 반사되는 스테인리스 스틸이다. 인간의 나르시시즘 본능을 자극하면서 작품 가까이 다가오게 만드는 이것은 실재와 부재의 경계를 흐리는 재료이기도 하다. 사각의 오목 거울로 만들어진 '현기증'(Vertigo Ⅴ & Ⅶ, 2012)에 다가가면 일그러진 내 모습을 비춘다. 순간 느껴지는 아찔함과 혼돈. 그가 볼록 거울이 아닌 오목 거울을 사용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물질을 비추는 반사(reflection)에 관심이 많아요. 고대 중국과 로마제국부터 현대미술가 제프 쿤스에 이르기까지 반사를 주제로 한 작품은 많지요. 하지만 대부분 볼록 거울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전 오목 거울을 주로 사용하죠. 볼록 거울이 위장 효과를 가진다고 한다면 오목 거울은 동양에서 말하는 음양 중에 음의 물질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것은 거울 자체로 머물지 않고 거울로 가득 찬 공간을 만들어내죠. 공간을 가득 채운 어둠처럼, 거울로 가득 찬 공간을 만들어 낸다는 점이 독특합니다."

조각을 통해 우주의 질서와 사유의 공간을 주조하는 카푸어는 작업실에 들어서면 "나는 영웅이 되기도 하고, 희생자, 여성, 남성, 어린이, 바보가 되기도 한다"면서 "이 같은 샤머니즘적 변형은 예술가의 자유로운 영혼과 동의어"라고 말했다.

이인선기자 kel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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