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소식에 심사가 뒤틀린 정가의 어느 거물급 인사가 뇌까렸다. "김대중이가 노벨상을 탄 것은 개도 웃을 일이다."당시 좌중을 격분케 한 그 말에 저자는 이렇게 받아쳤다. "웬만한 일이라면 사람들만 웃었을 텐데 얼마나 기쁜 일이면 개까지도 웃었겠느냐?"저자의 능청은 계속된다. "그 자리에 있었던 누군가가 그 말을 듣고 집에 있던 개에게 직접 물었다는 것이다. "그 때 너도 기뻐서 웃었니?"(223쪽)
객담(客談). 행동이나 말이 쓸데없고 싱겁다는 뜻이다. 언제든 날을 세우고 격돌할 준비가 돼 있는 한국 사회에서 이념의 좌우를 떠나, 함께 웃어 넘길 수 있는 정치ㆍ사회적 객담은 흔치 않다. 그러나 원로 법조인 한승헌(78) 전 감사원장은 작심하고 난사한다. 아호를 따'산민(山民) 객담'이라 이름한, 이를테면 한승헌 버전 유머집'유머수첩'(범우 발행)이 나왔다. (2004년), (2007년)의 뒤를 잇는 세번째 유머집이다.
북의 도발 대응에 대한 책임을 물어 국방 장관이 경질됐다. 후임으로 알려진 사람이 위장 전입을 문제로 밤사이 낙마했다. 바로 그 자가 국방장관의 적임이라 본 한 원장의 설명. "위장 전입을 잘 해야 군 작전에서 승리하는 것 아닌가?"(178쪽) 사람의 등을 쳐먹고 사는 사람이 안마사라면, 한 입으로 두 말 하는 사람은 동시 통역사다. "한 입으로 두 말 하는 남자도 부지기수"인 정치 현실을 꼬집기 위한 것이다.(148쪽)
한 원장의 유머를 두고 백기완씨는 "대목대목마다 너무 짜릿해, 샘물을 아껴두는 심정으로 하루에 세 편 이상은 안 읽고 애써 덮어 두었다"고, 고은 시인은 "한없는 낙관주의가 자아내는 웃음", 최일남씨는 "농담에 가시를 싸서 던지는 촌철살인의 멋"이라고 평했다.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