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요즘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의 얼굴에서 특유의 크고 환하게 웃는 모습이 사라졌다는 댓글이 올랐다. 앞머리에 젤을 발라 단정하게 넘긴 후로는 굳은 표정이 잦아졌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뭔가 몰리는 것 같기도 하고 결연하기도 한 기색이 자주 떠오르는 것 같다. 간단없이 밀어닥치는 강퍅한 정치 현실에 부대낀 탓이리라.
최근 안 후보가 직면하고 있는 최대 정치현안은 야권 후보단일화 요구일 것이다. 애초부터 그가 후보단일화를 염두에 뒀다는 정황은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그는 새누리당은 물론 민주통합당까지를 ‘낡은 정치’로 규정하면서 독자적인 정치개혁의 진앙지를 자처하고자 했던 흔적이 짙다. 비록 현 정권 심판을 목표로 했지만 제3의 독자적 입지를 추구했던 셈이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다. 과거사나 경제민주화 정책에 관한 중요한 차별화 전략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민주당 대선 후보와의 후보단일화론이 그의 차별화 노력을 점차 압도해왔다. 문 후보가 “민주당으로 들어오라”는 다소 거친 제안을 했을 때만해도 그는 그걸 일축하고 대선 완주를 선언하는 반격에 나섰다. 하지만 조국 서울대 교수의 ‘단일화 3단계 방안’이 나오고, 안 후보 대선 캠프에 민주당계 인사들이 속속 진입하면서 최근엔 캠프 내에서도 후보단일화 불가피론이 나돌 정도로 대세가 된 듯한 느낌이다.
최근 후보단일화 압력은 더욱 고조되는 양상이다. 그제는 작가 황석영씨 등 문화계 인사 102명이 후보단일화와 함께 단일화 실현을 위한 공동기구 구성을 촉구하고 나섰다. 문 후보는 이에 국회 지역구 의석을 200석으로 줄이는 걸 골자로 한 정치쇄신안을 발표하고, 일부 친노 인사들을 캠프에서 퇴진시키면서 안 후보의 개혁 요구에 부응하겠다는 모습을 보였다. 안 후보로서는 독자적인 대선 캠페인이 무르익기도 전에 후보단일화론의 쓰나미에 휩쓸려 버릴 지경에 처한 셈이다.
하지만 후보단일화 목소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과연 그것이 절대선(絶對善)이냐 하는 의구심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안 후보 입장에서도 그렇거니와, ‘제3의 정치’를 기대하며 그 동안 안 후보를 지지해왔던 약 25~30%(다자대결 기준)의 유권자 입장에서도 그렇다.
민주당이나 범야권에서 단일화를 요구하는 명분은 정권교체가 시대정신이라는 것이다. 물론 안 후보 본인도 그랬을 것이고, 안 후보의 지지자들 역시 정권교체를 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거의 없을 것이다. 문제는 정권교체의 주체가 누가 돼야 하느냐다. 안 후보는 몰라도, 그의 지지자들로서는 친노와 과거 민주화 세력이 어수선하게 조합된 현재의 민주당이 다시 한 번 정권교체의 주체가 되는 데엔 쉽사리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다.
정책과 지지자 성향 역시 엄연한 차이와 분화가 뚜렷하다. 경제민주화 정책만 해도 안 후보는 계열분리명령제 같은 상징적 강경책 외엔 점진적 개혁 쪽에 가까운 입장이다. 반면 민주당은 기업지배구조 개혁 등에 있어서 즉각적이고 과감한 정책을 공약하고 있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문ㆍ안 후보단일화’ 때 각 탈락 후보의 지지자 20% 정도가 단일 후보 대신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찍겠다는 의사가 나온 것은 각 후보 지지자들의 첨예한 성향 차이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안 후보로서는 국민의 호응과 지지에 보답하고, 자신의 야심 찬 정치실험이 한 때의 실없는 장난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남은 길은 많지 않다. 하나는 야권 후보단일화에 나서더라도 반드시 자신이 승리해 대선 본선에 나가거나, 그게 아니면 후보단일화 없이 대선에 나가 승패와 관계없이 독자적인 미래의 정치세력을 구축해 나가는 것이다. 안 후보 측은 국민이 길을 열어주면 후보단일화에 나서겠다는 주장이지만, 지지자들이 안 후보의 낙마를 관대하게 용납할 가능성은 많지 않다. ‘문ㆍ안 후보단일화’의 근본적 딜레마는 여기에 있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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