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근 극소수가 결정하는 폐쇄적 의사결정 구조와 부실한 보좌체계 겹쳐
인혁당 논란 이어 또 사법부 판단을 잘못 인식
국가 헌납=박정희에?
부모 이름 한 글자씩 따서 정수장학회 명칭 불구 본인은 "문제 없다" 고집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21일 기자회견에서 정수장학회의 '강탈'을 부정하는 발언을 한 것을 두고 박 후보의 역사인식에 대한 비판 여론이 당 안팎에서 확산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박 후보가 정수장학회와 관련한 법원 판결의 사실관계를 잘못 언급하면서 그의 '역사인식'과 '불통' 논란이 재점화하고 있다. 박 후보의 두 가지 아킬레스건이 동시에 불거진 것이다.
잘못된 사실 인식과 '불통' 논란
박 후보는 회견에서 정수장학회 강탈 논란에 따른 유족들의 주식 반환 청구 소송과 관련해 "법원에서 강압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해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린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올해 초 재판부는 "김지태씨가 국가의 강압에 의해 주식 증여 의사표시를 한 사실은 인정된다. 그러나 김씨의 의지가 완전히 박탈 당한 상태였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고, 시효도 지나 주식 반환 청구는 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박 후보가 '강압'을 인정한 사법부 판단 내용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셈이다.
문제는 이 같은 사례가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박 후보는 지난달 초에도 인혁당 사건 피해자에 대한 사과 여부를 묻는 질문에 "대법원 판결이 두 가지로 나오지 않았느냐"며 법원의 최종 판단을 인정하지 않는 듯한 답변을 해 비판을 받았다.
당 안팎에선 이런 문제가 박 후보 주변의 폐쇄적 의사결정구조에 따른 것이란 지적이 많다. 박 후보는 어떤 사안에 대해 주변의 의견을 수렴하되 최종적으론 혼자서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또 유독 보안을 중시해 주변의 극소수 측근을 제외하곤 대부분 내용을 알지 못한다. 다양한 의견을 듣는 소통 과정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박 후보는 실제 이번 회견을 앞두고 핵심 측근들과도 논의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비박(非朴) 진영의 김용태 의원은 22일 "이번 일은 박 후보의 의사결정 프로세스에 결정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며 "지속적으로 지적됐는데도 안 고쳐지니까 문제"라고 말했다.
부실한 보좌 시스템도 도마에 올랐다. 박 후보 주변의 법률적 보좌 기능이 너무 취약하다는 것이다. 당 법률지원단도 이번 회견을 앞두고 법률적 검토를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율사 출신의 한 친박계 의원은 "후보 주변에서 법원 판결 내용을 요약해 보고한 것으로 안다"며 "재판부가 강박으로 빼앗았다는 명시적 판단을 내린 부분을 후보에게 숙지시키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장학회 사유화 논란
야권 등에선 박 후보의 이 같은 역사인식이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 자신을 국가와 동일시하는 데 따른 것"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김지태씨가 전신인 부일장학회를 헌납했다고 하더라도 박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이름을 한 글자 씩 따서 '정수장학회'라고 이름 짓고 박 후보 자신과 박 전 대통령의 의전비서관이었던 최필립 이사장이 장학회를 이끌어 온 것은 사실상 '장학회 사유화'인데도 박 후보가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논란의 해법에 대해 "정수장학회의 이름을 바꾸고 사회에 환원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신정훈기자 h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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