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인기 영화'마누라 죽이기'와 같은 이야기가 현실로 일어났다. 일과 가정에 모두 주도권을 갖고 있는 부인에 불만을 품어 킬러를 고용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 영화 주인공들과 달리 현실에서는 사업이 날로 번창하면서 이혼을 요구하는 부인에 대한 남편의 살해 청부로 부인이 숨졌다.
유흥주점 업주인 정모(40)씨는 지난달 14일 오후 사업가인 부인 박모(34)씨에게 전화로 "사업에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을 소개해 주겠다. 차량과 운전기사를 보냈으니 타고 만나보라"며 박씨가 운영하는 서울 성동구 성수동 한 렌터카업체 앞으로 차를 보냈다. 정씨의 살해청부를 받고 운전기사로 가장한 원모(30ㆍ심부름센터 사장)씨는 박씨를 태우고 인근 오피스텔 지하 3층 주차장으로 데려가 목 졸라 살해한 뒤 경기 양주시 야산계곡에 박씨의 시신을 유기했다.
정씨는 다음날 경찰에 부인의 실종 신고를 했고, 원씨에게는 대포폰으로 경찰의 수사 진행 상황을 수시로 알려주었다. 경찰이 30여명의 수사 인력을 동원해 탐문 수색을 시작하자 수사에 혼선을 줄 목적으로 정씨는 원씨로 하여금 이틀 동안 부인의 신용카드와 휴대폰을 들고 CCTV가 없는 서울 강남과 경기도 지역을 돌며 카드를 사용하게 했다. 원씨는 박씨의 어머니와 친구 및 사건담당 형사 등이 박씨 휴대폰으로 연락하자 전화를 받지 않으면서 문자메시지로 "그런 일 아니에요" "잘 있어요" "임신 문제 때문에 그래요" 등의 답장을 보내 박씨가 가출한 것처럼 꾸몄다.
하지만 경찰이 박씨의 신용카드가 사용된 매장의 CCTV를 조사해보니 매번 같은 인상착의의 남성이 포착됐다. 경찰이 결국 원씨의 신원을 확인, 검거했고 남편 정씨의 사주도 드러났다. 정씨는 경찰 조사에서 "4년 전 운영했던 렌터카가 어려워져 아내에게 경영권을 넘긴 뒤 사업이 번창, 월 수입 2억 원이 넘는 업체가 됐다"며 "1년 전 아내가 이혼을 요구하면서 자녀를 빼앗기고 거지가 될 것 같아 범행을 결심했다"고 진술했다. 1년 전부터 이혼을 요구해온 박씨는 정씨에게 위자료로 6억원을 미리 줬지만 정씨는 이중 4억원을 탕진했다. 이후 정씨는 지난 5월 자신이 운영하는 유흥주점의 종업원을 통해 "사람 뒷조사를 할 만한 사람을 찾는다"며 원씨를 소개 받았다. 강도 및 강간미수 전과 15범인 원씨는 2011년 초부터 수원 팔달구에 'S기획'이라는 심부름센터를 차려 돈을 받고 사람을 뒷조사하는 일을 해 왔다. 정씨는 원씨를 만나 부인의 살해를 청부하면서 9차례 1억3,000만원을 건넨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 관계자는 "실종신고를 낸 정씨가 조사에 건성으로 임하는 등 비협조적이어서 주시해왔다"고 말했다. 서울 성동경찰서는 정씨와 원씨를 각각 살인교사와 살해 및 사체유기 혐의로 구속했다고 22일 밝혔다.
김현빈기자 hb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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