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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호의 테크닉 논술] 치밀한 자료조사·객관적 근거 돋보이나 원론 수준의 대안 아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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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호의 테크닉 논술] 치밀한 자료조사·객관적 근거 돋보이나 원론 수준의 대안 아쉬워

입력
2012.10.22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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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미덕은 치밀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한 날카로운 비판 의식이 돋보인다는 것이다. 학생은 최근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사건들을 성범죄 피해자의 인권이라는 일관된 시각에서 비판적으로 살피는 동시에 우리에게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객관적 사실들까지도 자신의 주장의 논거로 삼음으로써 글의 설득력을 높이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다. 고교생들이 글을 쓸 때 자주 실수하는 점이 자신의 주장을 객관적인 근거를 통해 입증하지 못하는 것인데, 그런 점에서 학생의 글은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비판하는 것만이 논술문 쓰기의 요건이라고 할 수는 없다. 어떤 사태에 대한 비판이 있으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 제시가 수반되는 것이 좋다. 학생이 저지르고 있는 한 가지 실수는 바로 비판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이 대안 제시 부분을 지나치게 간략하게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학생은 도입부를 제외하면 글의 분량의 대부분을 성범죄 피해자들의 인권이 침해 당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데 할애하고 있다. 다섯 가지나 된다. 그에 반해 대안 제시는 "피해자를 진정으로 보호할 수 있는 장기적 차원의 구체적인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는 마지막 한 문장이 전부다. 이 말은 타당하긴 하지만 너무 원론적이라 의미 있는 주장을 담고 있지 않다. 독자들이 알고 싶은 것은 그런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들인 것이다. 이것은 구성의 측면에서 큰 감점 요인이 된다.

학생이 범하고 있는 또 한 가지 실수는 주장을 전개하는 데 있어서 다소 논리적이지 않은 논증을 펼친다는데 있다. 예를 들어 보자. 학생은 네 번째 단락에서 "성범죄 예방 차원의 대책보다도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의 인권을 지킬 수 있는 대책이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 이유가 조금 엉뚱하다. "성범죄의 안전지대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완전한 예방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후적 대책이 예방보다 우선이라는 것인데, 이런 주장에 동의할 사람은 비록 있다 해도 극히 드물 것이다. 성범죄의 안전지대가 없다는 것은 오히려 국가가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서 성범죄를 예방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 비유를 하자면, 지뢰 때문에 다리를 절단한 사람들에게 좋은 의족을 달아주는 것보다 지뢰 자체를 제거하는 것이 더 근본적인 해결책인 것과 같다. 지뢰의 수가 너무 많아서 그것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더욱 적극적으로 그것을 제거하고 안전한 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더구나 앞에서 이렇게 사후적 대책을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세 번째 문제점으로 비판하고 있는 지점은 예방책에 해당하는 것이라 일관성이 손상되고 있다. 성범죄자 열람 제도는 범죄 예방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학생은 이것을 두고 "피해자의 인권과 잠재적 피해자의 인권을 위해서라도 꼭 중요시되어야 할 문제"라고 쓰고 있는데, 이 부분의 설득력은 미흡하다. 우선 성범죄 피해자가 반경 1㎞ 이내의 성범죄자들의 신상을 열람하는 것이 그들의 인권 보호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분명치 않다. 또한 성범죄자 열람 제도가 '잠재적 피해자'의 인권을 위한 것이라는 말은 결국 그 제도가 예방을 목적으로 한다는 말과 같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정합적이지 않은 글이 되어 버린다.

★기고와 첨삭지도를 희망하는 중ㆍ고생은 약 2,000자 분량의 원고를 nie@hk.co.kr로 보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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