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질 것처럼 불안하게 부푼 빨간 풍선' 같았다는 사진작가 이한구씨의 군 시절이 20여 년 만에 봉인이 풀린 채 세상에 나왔다. 사진전 '군용(軍用)'이 서울 통의동 류가헌에서 28일까지 열린다.
얼핏 보면 여느 군부대 사진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군 생활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의문투성이다. 잠자는 군인의 양쪽 발목에 걸려있는 두 개의 고무줄. 이것은 군복 바지를 단정히 조일 때 쓰이는 필수품이다. 속옷만 입고 차렷한 점호시간 사진에선 구타 흔적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임을 엿볼 수 있다. 캐비닛마다 걸린 가족사진 속에선 그리움이 묻어나고, 산속 동계훈련 중 밥차 앞에선 그들의 모습에선 난민의 절박함이 어린다.
이씨가 1989년부터 1992년까지 최전방인 강원도 화천 영월리에서 군복무를 하면서 포착한 장면이다. 군대에 가야 한다면 최전방에서 사진을 찍고 싶었다는 이씨는 상병이 된 후로 필름 카메라에 동료 군인들을 담았다. 촬영한 필름은 비닐봉지와 자루에 담아 땅속에 묻었고 휴가 때마다 은밀하게 집으로 가져왔다. 그는 군 시절을 "말랑말랑한 감성과 미완의 자의식을 가진 청년들에 대한 배려가 없어 사람마저 군용으로 취급했던 시절"로 추억했다. 아련한 그리운 시간이 아닌 도망치고 싶던 폭력과 억압의 시절. "뾰족하던 삽이 아이의 엉덩이처럼 둥글게 파인 것을 보고 이 날카롭던 삽날이 청춘들의 가슴 속에 파고들어 와 박힌 느낌이었어요."
이번 전시에는 군인들의 내밀한 풍경 20여 점이 출품됐다. 마른 꽃잎을 만들 듯 살아있는 나비를 그대로 책 속에 넣어 채집하고, 군인들의 정서 함양을 위함이 아니라 겨울철 가스에 가장 예민한 십자매로 가스 유출을 확인하는 장면은 다소 충격적이다. 이들 사진은 전시와 함께 책(눈빛출판사)으로도 묶여 나왔다.
이인선기자 kel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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