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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쌍 중 2~3쌍 주례 없는 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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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쌍 중 2~3쌍 주례 없는 결혼식

입력
2012.10.21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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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오후 7시 서울 중구 서소문동 한 결혼식장. 동갑내기 커플 이여택(27) 양진영씨가 주인공인 이날 결혼식에서 색다른 풍경이 연출됐다. 결혼식 식순 한 가운데를 차지하는 '주례'도, '주례사'도 빠져 있다. 주례사를 대신해 신랑 신부와 양가 부모가 마이크를 잡았다. 하객을 향해 선 예비부부는 서로에게 쓴 '혼인서약서'를 읽어 내려가며 "평생 사랑하겠다"고 다짐했다. 주례 대신 단상에 선 신랑의 아버지가 두 사람을 마주보며 '성혼선언문'을 낭독하며 "하객들이 결혼의 증인이 되어 줄 것"을 부탁했고 신부의 아버지는 예비 부부를 위해 직접 지은 축시를 읊어 덕담을 대신했다. 이날 결혼식에 하객으로 참석한 이은희(42)씨는 "지금까지 숱하게 봤던 결혼식 중 가장 신선했다"며 "보통 결혼식 때는 주례시간이 되면 식사를 하러 갔는데 신랑신부와 양가 부모가 생동감이 있는 이야기를 해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고 말했다.

주례가 주관하는 결혼식이 아닌 신랑신부가 자기들만의 특별한 이벤트로 결혼식을 꾸미는 주례 없는 결혼식이 유행이다. 한 예식업체 관계자는 "이곳서 결혼하는 10쌍 중 2~3쌍이 주례 없는 결혼식으로 결혼을 한다"며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최근에는 신랑신부가 혼인서약을 직접 작성하는 것은 물론이고 부부가 직접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하거나 마술쇼를 진행하는 등 결혼식에 취향과 개성이 한껏 반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결혼식에 있어 없어서 안 될 중요한 존재로 대접받았던 주례를 뺀 결혼식이 퍼지고 있는 이유는 뭘까. 주례 없는 결혼식을 경험한 신랑신부는 "무엇보다 신랑신부의 프로필을 읽은 뒤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사랑하라'고 강요하는 주례의 다짐을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이 최대 장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씨 역시 "뻔한 주례사 대신 부모님의 진심 어린 성혼선언과 덕담을 듣고 하객 대표로부터 축하를 받으니 오히려 부부로서의 책임감을 더 느껴지는 것 같다"고 만족해했다. 하객들도 결혼식 내내 주인공들의 뒤통수가 아닌 얼굴을 볼 수 있어 좋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강윤희 켈리스튜디오 상담실장은 "주례를 세울 수 없어 전문 주례사를 고용할 경우 이력에 따라 적게는 10만 원부터 많게는 수십 만원이 들어간다"며 "허례허식을 최대한 줄여 기본 살림을 갖추는 데 쓰겠다는 실속파들이 늘면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전통 혼례에서는 마을 어른이 순서에 맞게 절을 시키고 술잔을 돌리는 등 사회자의 의미로 예식을 이끌었을 뿐 주례라는 개념이 없었다. 근대 개화기 이후 서양 교회혼의 변형인 신식 결혼이 생겨나면서 신의 대리자로서의 성직자 역할과 전통식의 사회자 역할이 혼합돼 주례로 발전했다는 것이 통설.

물론 이런 신풍속에 대해 일각에서는 "결혼식이 지나치게 가벼워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통상 주례를 맡는 신랑신부의 은사나 직장상사, 사회 저명인사가 인륜지대사의 증인이자 인생선배로서 주는 한마디는 순탄할 수만은 없는 결혼생활에서 가볍지 않다는 것이다. 주례 없는 결혼식만을 대행하는 컨설팅업체 '행복한 사람들'의 유춘근 대표는 "수 십 년 동안 주례 있는 결혼식에 익숙한 부모 세대에게 성혼의 증인으로서 결혼에 권위를 부여하는 '주례'는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절차"라며 "명망가를 주례로 세워야 권위 있는 결혼식이 된다는 위선은 깨되 '주례 없는 결혼식'의 의미를 잘 살릴 수 있도록 조율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주례 없는 결혼식을 세태 변화의 반영으로 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강학중 가정경영연구소장은 "주례 없는 결혼식이 증가하는 것은 결혼이 판에 박힌 엄숙한 행사가 아니라 평생 기억할만한 개인적인 이벤트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앞으로 결혼식의 형식과 방법, 내용이 훨씬 다양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손효숙기자 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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