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경기도에 있는 2층 건물의 임대 수입으로 살고 있는 김모(60)씨는 최근 암 보험을 들기 위해 대형 보험사에 문의했지만 모두 퇴짜를 맞았다. 월 200만원 정도 고정수입이 있고, 건강검진에서 이상 진단을 받은 적도 없지만 보험사들이 김씨가 고혈압이 있고 나이도 많아 '위험군'이라고 판단한 탓이다. 김씨는 "보험사들이 보장성 보험의 가입 연령을 대부분 만 60세까지로 두고 있지만 실제 고령자를 받는 곳은 거의 없다"며 "고령화 사회이고 노인 중 건강한 사람들의 비중도 있는데 정책은 한참 뒤처져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만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545만명. 우리나라 국민 10명 가운데 한 명은 노인이지만, 고령층에게 보험사의 장벽은 높기만 하다. '만60세까지 가입 가능하다'는 상품 약관은 홍보문구에 불과할 뿐, 만 60세가 되면 보험사들은 지병, 가족력 등을 내세워 대부분 거절하고 있다.
19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고령층의 암보험 가입률은 8%선이다. 65세 미만이 62%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과 크게 비교 된다. 또 환자가 내는 치료비의 전액 또는 90%를 보험사가 부담하는 상품인 실손보험의 60세 이상 가입률은 3.9%(민병두 민주통합당 의원실)에 불과하다. 보험사의 핵심 상품들에서 고령층이 철저히 배제되고 있는 것이다.
한 대형 보험사 관계자는 "주요 보험료 산정 기준이 발병률인데 자체 경험통계 자료에 따르면 암 발병률이 35세 남자에 비해 60세는 9.7배, 70세는 19.7배나 높아 고령층 가입자는 같은 조건으로 보험을 들면 젊을 때보다 10~20배 더 내야 한다"며 "가입자는 보험료가 부담스럽고, 보험사는 향후 보험금 지급 등으로 손해율 악화가 예상돼 고령자를 받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또 다른 보험사 관계자는 "고혈압, 당뇨, 신장 질환 등은 합병증으로 쇼크가 오는 게 무서운데 고령층 상당수가 이런 지병이 있어 대부분 거절되는 게 사실이고 받아들이더라도 '5년간 무보증' '지병으로 인한 합병증은 무보증' 등 조건을 내건다"고 말했다.
물론 사망보장금액을 통해 장례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상조보험 등은 실버보험으로 특화돼 70~80세도 가입이 가능하지만 사망 이후 상황을 돕는 것이라 살아 생전 건강 이상이 있을 때 의료비를 보장받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그나마 치매나 중풍 등 노인성 질환을 보장해 주는 간병보험 정도가 고령층(70세까지)에게 열려 있다.
양성문 보험개발원 고령화대응 TF팀장은 "보험 상품도 고령화 진전에 맞춰 바꾸어 갈 필요가 있다"며 "가령 1,000만원인 암 보험의 보장범위를 500만원으로 줄이는 식으로 보혐료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양 팀장은 "정부 차원에서 노인으로 인정되는 연령을 높이고 그에 맞는 정책을 펴가면 보험사들도 가입 나이, 상품 구성 등에서 변화를 보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보험연구원도 최근 '민영 의료보험 개선' 세미나에서 "생애 의료비용 중 65세 이후가 차지하는 비중이 65%에 달하는데도 이 나이대 실손보험 가입률은 1%에도 미치지 못한다"며 "고정 소득이 있는 젊은 시기에는 적립만 하고 노후에 의료비로 쓸 수 있는 노인 의료비 보장 보험 등 새로운 개념의 상품을 출시하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강아름기자 s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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