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 왕이 된 남자'가 20일 1,000만 관객을 넘어섰다. 한국영화 박스오피스 기록을 갱신한 '도둑들'에 이어 한 해에 한국영화 2편이 1,000만 관객을 돌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광해'는 '실미도'(2003년)이후 7번째로 '꿈의 목표'인 1,000만 관객의 전당에 당당히 이름을 올려놓았다.
주인공인 이병헌의 호연과 잘 짜여진 시나리오, 추창민 감독의 탁월한 연출이 잘 어우러져 성공했다고 하지만 '광해'의 이번 기록은 기존 1,000만 영화의 전형적인 공식을 깼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우선 '광해'는 가을 비수기에 1,000만을 이뤄냈다. '도둑들'과 '괴물', '해운대'는 여름에, '왕의 남자', '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는 겨울에 개봉한 작품들이다. 이들 모두 방학을 끼고 있는 겨울이나 여름철 성수기 시장에서 탄생했다. 가을 극장가는 추석연휴가 있지만 여름이나 겨울에 비해선 비수기로 구분된다. 이제껏 가을시즌 최고 흥행작은 2006년 9월 개봉했던 '타짜'(684만명)로 700만을 넘기지 못했다.
이전 1,000만 이상 관객의 영화들 대부분은 100억원 이상의 대작들이다. '태극기 휘날리며'가 190억원, '해운대'가 160억원, '괴물'이 140억원, '실미도'가 110억원이 들어갔다. 하지만 '광해'의 제작비는 62억원으로 마케팅비용을 합해도 약 90억원 정도에 불과하다. 400만명 이상의 관객만 들어도 적정 이윤을 남길 수 있는 중박 규모의 영화였다.
지금까지 100억원 이상의 큰 돈을 들이고도 1,000만 관객을 모으지 못한 사례도 적지 않다. 지난 연말 개봉된 '마이웨이'는 350억원을 들였지만 214만명이 찾았고, 100억원 이상을 들여 올 봄 개봉한 '알투비 리턴 투 베이스'는 120만명에 그치고 말았다. 심형래 감독의 '라스트 갓 파더'도 170억원을 쏟아 부었지만 결국 256만명에 그쳐 큰 손해를 떠안아야 했다.
보통 1,000만 영화에는 사회적 이슈를 소재로 하고, 멜로와 신파 등 보편적인 정서와 함께 드라마적인 전개를 담아야 한다는 전형이 있었다. 하지만 올 여름의 '도둑들'은 사회적 이슈 같은 것 없이 오로지 재미만 좇는 장르 영화의 특성만으로 신기록을 세웠다. '광해' 또한 재미난 콘텐츠만으로 특별한 외적 변수 없이 1,000만 관객을 불러 모은 것이다.
'도둑들'과 '광해'의 쌍끌이로 올해 한국영화 관객수는 2006년 기록인 9,174만명을 넘어 1억명 시대를 열 것으로 기대된다. 영화진흥위원회 관계자는 "서로 다른 장르에서 1,000만 관객을 달성했다는 것은 관객들의 취향이 그만큼 다양해지고 시장 전체가 성장했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광해' 이후 1,000만 관객에 도전할 영화로는 '설국열차' '미스터고' 등을 꼽을 수 있다. 내년 개봉 예정인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엔 400억원이 넘는 돈이 투입된다. 한국 영화 사상 가장 큰 돈이 들어가는 영화로 1,000만 관객 정도로도 수지를 맞출 수 없는 매머드급이다. 투자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 이창현 홍보팀장은 "한국 시장보다는 미주와 유럽 시장을 염두에 두고 제작하는 영화로 해외에서 투자를 받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쇼박스가 내년 여름 개봉을 목표로 하는 김용화 감독의 '미스터고'도 300억원이 넘는 대작이다. 허영만 만화인 '제7구단'을 원작으로 야구하는 고릴라가 한국 프로야구팀에 입단해 슈퍼스타로 성장하는 과정을 담은 스포츠 휴먼드라마다.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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