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30대 시절을 정리하는 앨범입니다. 그때 만들어 놓은 곡들을 10년이 지나서 40대의 시선으로 녹음한 거죠. 감정을 좀 더 객관화시킬 수 있었다고 할까요."
1988년 데뷔한 그룹 동물원에서 보컬 겸 키보드를 맡고 있는 박기영(47)이 22년 만에 두 번째 솔로 앨범 '라 스트라다'를 냈다. 동물원의 가장 최근 앨범인 9집 이후로 따져도 9년 만이어서 거의 휴업 상태인 동물원이 모처럼 일부 개장(開場)이라도 한 느낌이다.
19일 서울 신사동 한국콘서바토리에서 만난 그는 "일기를 쓰듯 30대에 느낀 감상을 피아노로 표현한 거라서 발표할 생각이 없던 곡들이었는데 음반 제작자의 제안으로 앨범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이탈리아어로 '길'이라는 뜻을 지닌 이 앨범은 가사가 없는 연주곡들로 채워졌다. 직장을 다니다 그만두고 전공을 살려 외무고시를 준비하던 중 문득 '난 어디로 가야 할까' 모색하던 1998년부터 2001년까지 지인과 함께 경북 울진에서 카페를 운영하던 시기 작곡했다.
"우연찮게 울진 바닷가에 카페를 내게 됐고 일주일에 사나흘씩 거기에 머물면서 작곡을 했어요. 결국 카페는 보증금의 절반도 못 건지고 문을 닫았지만 제겐 꽤 행복한 경험이었습니다."
앨범에는 바다를 주제로 한 4곡의 연작을 비롯해 총 12곡이 실렸다. 피아노 한 대만으로 연주한 곡도 있고 현악기와 협연한 곡, 소금 등 전통 악기와 함께 한 곡도 있다. '당신의 이미지' 같은 곡은 동물원의 앨범에 수록돼도 괜찮을 정도로 선율이 뚜렷하다. 그는 "그 곡에는 가사를 붙여볼까 생각도 했지만 막상 붙여 보니 매력이 없고 글로 표현하기 힘든 감상이어서 넣지 않기로 했다"고 했다.
2001년 2년여의 짧은 외도를 마치고 그는 학업의 길로 들어섰다. 대학원에서 예술경영학을 전공한 뒤 2003년부터 서울예술대학, 단국대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자신이 뛰어난 기교의 연주자가 아니기에 제자들에게도 "음악이란 이야기를 담는 그릇이 되고,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표현의 수단이 돼야 한다"고 조언한다고 한다.
앨범 발표 후 여는 첫 공연은 소외 지역 어린이들을 위한 자선 콘서트다. 24, 25일 서울 안국동의 복합문화공간 해빛(HABIT)에서 천주교 의정부교구가 주최하는 자선 행사 '꿈꾸는 카메라&음악회'에 재즈 밴드 루나 힐과 함께 참여한다.
내년 초엔 동물원의 새 앨범을 낼 계획도 있다. "콘서트는 꾸준히 해왔지만 과거의 유산만을 팔아 먹는 것 같은 자괴감이 들어서" 다른 멤버 2명(유준열 배영길)과 함께 개별적으로 곡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음악이 곧 삶이라 말할 순 없지만 지금처럼 음악이 절실하고 소중하다고 생각한 적도 없는 것 같아요. 음악이란 삶의 일부이고 음악이 존재하는 이유도 삶의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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