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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자의 양심·의지가 있어야 검찰개혁 가능… 그런 사람이 대통령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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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자의 양심·의지가 있어야 검찰개혁 가능… 그런 사람이 대통령돼야”

입력
2012.10.21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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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사건 변호 47년

시국사건만 130여건 맡아… 민청학련 사건이 가장 기억…경북대 총학생회장 출신 여정남… 변론한 사람 중 유일하게 처형

검찰 개혁은 요원

검찰총장 임기제가 있어도 중립·독립성 지켜지지 않아…별도기관 만들어봐야 옥상옥… 결국 현재의 검찰을 개혁해야

국민이 힘을 보여줘야

사법·행정·의회의 체질구조… 국민을 거역할 수 없게 바꿔야…시민사회 내지 시민단체가 권력·기업에 훈계할 소임 있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인권변호사인 한승헌(78) 전 감사원장은 서울 은평구 역촌동에 살며 지하철과 버스를 탄다. 대조동 갈현동 등 강북의 고만고만한 동네에서만 사는 그에게 딸은 인천의 큰 아파트를 권했지만 아파트만 덩그레 좋을 뿐 '머릿속에 단축키처럼' 교회와 떡집과 세탁소와 시장이, 이웃들이 이어지는 강북 마을 같지 않아 옮겨갈 생각은 없단다. 박정희 유신 독재 아래서 소설가 남정현씨의 소설 '분지' 필화사건 변호를 시작으로 재일동포유학생간첩사건, 동백림사건, 통혁당 인혁당 사건 등을 줄줄이 변호하며 시국사건변호사1호로도 불렸던 그는 '김대중내란음모사건'을 비롯해 옥고도 두 번이나 치르고 8년 동안 유신정권에 의해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하기도 했다. 그래도 늘 유머를 잃지 않은 것으로 유명한데 그가 쓴 유머책은 인기도서가 되어 한때 살림을 보태주기도 했다. 에 이어 최근 을 펴낸 그를 만났다. 이제는 공인 노릇에서 물러난다는 그에게 검찰 개혁을 물었다.

_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석좌교수로 모교인 전북대학과 가천대학에 가끔 강의 나가고 글쓰고 되도록 공적인 영역에서는 이름도 몸도 빼고 명실상부한 은퇴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박원순 시장 취임한 후에 서울시정고문단을 구성할 때 명예직으로 대표 맡은 것 하나 있어요. 전북대학교에서 중앙도서관에 아호를 딴 산민문고를 만든다고 해서 책을 정리하고 있어요. 그 밖의 자료들도 모아서 11월에 전북대 박물관에서 한승헌기념전시회를 한다고 합니다. 축사요청은 많이 받는데 거절하면 서운해할까봐 여기 저기 나가고 있습니다. 거기 가면 좀 재미있게 하려고 하지요. 최근에 잘 쓰는 거는 박원순 시장한테 들었어요. 박 시장이 밥 먹으면서 그래요. '저랑 식사를 같이 하는 사람들이 밥이 맛있다고 해요.'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시장이 반찬이래요.' 5일 (경제민주화를 외친) 중앙대 유인호 교수(1929~1992) 20주기 추모식에 가서 추모사를 할 때는 그랬어요. 유인호 교수님이 박정희정권은 경제적 실패를 해서 망한다 망한다 했는데 버티고 있으니까 기독교 쪽에서 아니 망한다 망한다 그런데 아직도 안 망하고 있지 않느냐 하니까 유인호 교수님이 예수님은 온다 온다 해놓고 2000년을 안 오시지 않았느냐.(웃음) 그 말을 상기시키면서 제가 예수님 안 오셔도 좋은데 다만 하늘에서 그 뜻이 이뤄지듯이 땅에서도 그 뜻이 이뤄졌으면 좋겠다 특히 12월에 그 뜻이 이뤄졌으면 좋겠다 그랬어요.

_유머는 집안 내력인가요?

"농촌에서 가난한 농부의 자식으로 자랐으니 희희낙락할 환경은 아니었고 우리 어머니가 1904년생이니까 무학이에요. 그런데 재치있는 말씀을 잘 하셨어요. 가령 우리 집안 청주 한씨와 어머니 집안 경주 이씨 사람이 서로 자기 집안이 양반이라고 입씨름을 하면 어머님이 듣고 있다가 '양반 양반 하는데 합치면 삼십전이다, 삼십전' 그래요. 당시 환율로 한 냥(양)이 20전이니까 양 반, 즉 한 양 반이면 삼십전이라는 거지요.(웃음)"

_65년부터 온갖 시국사건의 변호사로 47년을 지내셨는데 가장 기억에 남은 사건과 사람을 꼽으라면요?

"몇 년 전 이라고 7권짜리 자료문헌집을 내면서 보니까 시국사건으로 알려진 사건을 130여건을 맡았더군요. 저도 그렇게 많은데 놀랐어요. 하나만 꼽으라면 (1974년) 대통령 긴급조치 1호, 4호 사건 민청학련 사건이지요. 규모로 보나 야만적인 형벌로 보나 배후집단으로 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조작해서 참혹한 형집행을 한 걸로 비춰보나 잊을 수 없어요. 75년 4월 9일날 처형된 인혁당 관련 8명 중에서 경북대 총학생회장 출신의 여정남씨는 제가 변론한 분 가운데에서 처형장에 매달린 유일한 분이고요. 당시 저는 대통령 긴급조치 1호의 첫 번째 사건, 장준하 백기완 두 분이 개헌청원 서명을 받다가 긴급조치 위반으로 잡혀 들어간 것을 변론한 데 이어 김대중 총재의 납치 후에 선거법 위반사건, 김지하의 인혁당 관련 기고로 재구속된 사건, 변협회장 지낸 민주회복국민회의 이병린 변호사 구속사건을 연달아 맡고 있었는데 남산(안기부)에서 김지하 변론에서는 손을 떼달라고 해요. 그래서 거부했더니 그 다음날로 잡아가더라고요. (2년전 잡지에 쓴 글을 들어) 반공법 위반으로 서울구치소?들어갔어요. 감옥에서 김지하 시인도 만나고 여정남씨도 보고 그랬는데 인혁당 사건 형집행이 일어난 새벽에는 참극이 벌어진 줄도 모르고 감방에서 잠을 자고 있었어요. 낮에야 서울구치소 담 너머에서 가족들과 민주화운동단체들이 항의하는 소리를 듣고 알았지요. 넉 달 후(8월 17일) 장준하 선생이 일요일에 참변을 당했는데 그 전 목요일에 제 재판이 있었어요. 그 날 바로 제 등뒤에 앉으셔서 몸 약한데 얼마나 고생 되느냐고 위로를 하셨어요. 여기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사했는데 사흘만에 참변을 당하신 거에요. 잊을 수가 없지. 나중에 가족한테 들은 건데 재판 때마다 오셨대요. 세월이 오래도록 진상규명이 안되었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원형함몰이 된 두개골이 드러난 걸 계기로 재수사 하자는 논의가 나오고 조사위원회가 생겼다고 하니까 잘 되길 바랍니다."

_끔찍했던 박정희 시대를 기억하면 반유신투쟁을 했다는 이들이나 동교동계 인물들이 박근혜 캠프로 간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네요.

""민주화운동을 했거나 동교동계를 한 사람들이 새삼스럽게 박근혜 지지를 표명하고 나선 것처럼 방송에서는 나오는데 그 분들 몇 년 전에 한나라당 공천신청해서 나갔다가 떨어지기도 하고 선진당도 가고 이미 민주당 내지 야권을 떠난 사람들이에요. 신문에도 상세히 실렸어요."

_변호사 이전에 검사를 5년 하셨지요. 이 정부 들어서는 검찰이 역할을 대놓고 포기하고 있는데 개혁은 가능할까요?

"검찰이 명실상부하게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하려면 집권자와 검찰총수의 양심과 의지가 가장 중요해요. 검찰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위해 검찰총장 임기제를 두고 있지만 잘 지켜지지도 않고 있잖아요. 검찰중립이 안되니까 공비처라고 고위공직자나 대통령 친인척을 수사하는 별도의 수사기관을 두자 하는데 그 기관이라고 해서 하루 아침에 공정무사한 검찰이 된다는 보장도 없고 옥상옥이 되기 쉬워요. 검찰에 대한 불신 때문에 특검제도 나오는 것인데 특검제가 실효를 거둔 적도 별로 없거든요. 현재 있는 기관, 현재 검찰을 명실상부하게 개혁한다는 노력이 필요한데 참 어렵지요. 집권자의 눈치를 본다든가 집권자가 검찰을 통해서 자기 이익을 지키려고 마음을 먹으면 힘들어요. 그래서 검찰을 개혁할 수 있는 지도자가 정권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노무현 정부 때에도 검찰개혁의 의지는 있었지만 검찰의 집단적인 반발에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했어요. 검찰총장 임명권이 대통령에게 있고 자기 의중에 있는 사람을 임명하는 거야 어떻게 막겠어요. 그런데 구체적 사안에 대해서 마음에 안든다고 간섭이나 문책, 불이익한 인사조치를 하면 안되지요. 그런 면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제가 감사원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한번도 감사원 업무에 대해서 간섭이나 지시를 한 적이 없어요. 대통령께서 감사원 독립에 어긋나는 말씀을 하신다면 어떻게 응대를 할까 모범답안을 두 개를 항상 머릿속에 넣고 다녔는데 그걸 쓸 일이 없었습니다. 청와대나 권력 정상부에서 국가기관에 간섭을 많이 하는 건 두 가지에요. 대통령 자신이 그러니까 참모들이 쥐어짜는 게 있고 정상의 한 분은 그렇게까지 생각을 않는데 주변의 인물들이 과잉충성이나 자기존재감을 높이기 위해서, 또는 그것이 복합적인 게 있어요. 최근 실형판결이 난 총리실의 민간인사찰 같은 것은 계통을 밟고 올라가보면 대통령까지 의심을 받아야 할 증좌가 여러 가지 있잖아요. 이런 거는 위에 사람이 바라니까 우리가 해드려야지 하는 뜻에서 했다고 봐요. 위에서 희망하고 밑에서 충성하는 게 매치가 되는 사례는 다른 기관에서도 많다고 봅니다."

_민간인 사찰도 'VIP(대통령)'에게 보고를 했다, 내곡동 집을 사는 돈을 대통령 아들은 큰아버지한테 받았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관여했는지로 수사가 나아가지 않아요.

"법정에 가서 유죄가 될 만큼 증거를 확보하려면 소환조사도 하고 증거압수도 해야 되는데 검찰수사에 아직도 성역이라는 게 있어서 엉거주춤한 상태로 사건을 덮으니까 그렇지요. 이러면 검찰을 통한 부정의 척결이나 정의실현은 도저히 될 수가 없어요. 총리실 민간인사찰은 대통령 입에서 내가 보고받았다 그런 말만 없다 뿐이지 모든 문서상에 VIP표시가 있잖아요. 문제가 있다면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하거나 정례 라디오 방송에서 해명을 해야 할 텐데 입을 다물고 그냥 넘어가잖아요. 과거에 BBK사건도 그렇고 내곡동 문제도 대통령이 피의자가 될지도 모르는 사안인데 입을 다물고 있잖아요. 그래서 내곡동 수사 특검은 어쩌면 종래와는 다르게 성과를 거두지 않겠냐 이런 생각도 듭니다. 대통령 아들이 큰아버지한테 6억을 빌려오는데 모두 현찰로 해서 큰 가방에 담아가지고 왔다. 60만원만 보내도 계좌이체를 하는 시대에. 그걸 검찰이 따져 묻기 전에 대통령이 몰랐으면 아들 불러다가 따지고 해명을 하든지 잘못했다고 하면 되는데 불리하면 침묵하고 검찰은 알아서 수사를 멈추고 이런 일이 반복되면 잘못과는 별개로 대통령의 도덕성이나 윤리수준을 낮추보고 폄하를 안 할 수 없게 되겠지요."

_김영삼 정부 때에 이미 대통령 아들을 수사하고 감옥에까지 넣었는데 20여년이 흐른 지금 수사조차 못한다는 것은 검찰이 퇴보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과연 개혁이 가능할까요?

"역사를 보면 권력 잡은 사람의 자기성찰과 자기혁신의 의지로 문제가 바로잡힌 경우가 별로 없어요. 개헌만 보더라도 국민이 크게 궐기하고 힘을 보여줘서 됐을 때 좋았습니다. 4.19후 개헌, 87년 6월 항쟁 후의 개헌이 좋은 예입니다. 87년 헌법이 4반세기 이상 개정되지 않고 실행되고 있잖아요. 당시 6월 항쟁에 의해서 분출된 국민의 여론이나 희망이 거기 응축되었기 때문이거든요. 그렇듯이 사법부와 행정부, 입법부의 체질도 국민이 감시하고 압박해서 국민의 뜻을 거역할 수 없는 구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이번 대선을 앞두고는 누구에게 권력이 가느냐 하는 권력이동만 볼게 아니라 국민 여러 계층의 의사와 힘이 골고루 반영되는 권력기관의 구성을 차분히 논의해봐도 좋겠지요. 그리고 유권자들은 대통령이나 정부를 비난만 하기보다 그를 누가 뽑았는가 책임지는 자세를 지녀야 합니다. 과거처럼 국민의 의사가 유린되는 부정선거나 강압선거인 것도 아닌데 주인이 머슴 탓만 하고 끝나서는 안됩니다. 그런 사람한테 표가 갈 수 없도록 바르게 선거를 이끌었어야지요. 나라를 구성하는 요소를 정부 기업 시민사회로 보기도 하는데 정부나 기업이 스스로의 자각과 변화에 의해서 개선된다고 기대하기는 참 어려워요. 정부는 권력추구가 지상이고 기업은 이윤추구가 지상이니까 그 두 축에 대해서 예방주사도 놓고 훈계도 할 수 있는 소임은 시민사회 내지 시민단체에 있다고 봅니다. 우리나라가 다행히 시민사회는 굉장히 활발하게 움직여서 어려운 고비마다 국민의 뜻을 잘 대변했으니 이번에도 기대를 합니다."

서화숙선임기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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