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급외자로 밀려 6개월간 방치, 등급외자 전용 주간보호센터에서 웃음 찾아,
"OO 엄마, 내가 젊어 고생해 벌어온 그 많은 돈 다 뭐했나?"
"…. 내가 잘못했소."
"OO 엄마, 우리 좋은 날이 언제지?"
"3남매 고등학교 다닐 때 행복했지. 말썽도 안 부리고 학교도 잘 다니고, 영감 돈도 잘 벌어오고."
"근데 여긴 어디야, 내 친구들은 어디 있나."
"…."
"…."
노(老)부부는 표정이 없다. 며칠 걸러 짧게 토해내는 문답은 늘 같다. 그림자처럼 달라붙은 통증이 선잠을 깨우면, 과자나 빵 부스러기를 먹고, 우두커니 앉아 또 하루를 잃는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김모(78)씨 부부가 하릴없이 내쉰 숨은 9평 남짓 월셋방을 퀴퀴한 냄새로 물들였다.
문득 정신이 돌아오면 기억을 더듬느라 안간힘을 쓰지만 부부의 대화는 쳇바퀴를 돈다. 돈, 행복, 사람에 얽힌 파편 3가지. 하긴 인생에서 그보다 소중한 게 있으랴. 그렇다고 치매에 걸린 김씨와 우울증을 앓는 부인(74)에게 더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부부의 사연을 얼기설기 짜맞추려면 어쩔 수 없이 주변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부부는 상실의 늪으로 내려온 희망의 동아줄을 이제 막 잡은 참이다.
손녀의 증언
3년 전 새로 사 신지 않은 신발은 그대로 썩어 녹아 내렸다. 우울증에 시달리던 할머니는 아마 그 무렵부터 꼼짝없이 누웠다. 약도 끊고 거의 아무 것도 먹지 않아 말라갔다. 할아버지가 장을 보고 수발을 들었다. 할아버지는 동네에서 강아지(메리)를 주워와 외로움을 달랬다. 적어도 남들 눈엔 오순도순 정다워 보였다.
1년쯤 지나자 할아버지는 가끔 귀가가 늦거나 외박을 했다. 잠깐 산책 다녀온다더니, 집 나간 메리 찾아온다더니 돌아오지 않았다. 파출소에서 자거나 밤새 거리를 헤맸다. 했던 말을 반복하는 횟수가 잦아지고 대소변마저 잘 가리지 못했다. 할머니더러 "아줌마"라고도 했다.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변변한 벌이가 없는 대학생 손녀(23)가 해줄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다행히 할아버지는 장기요양보험 3등급을 받아 재가방문요양서비스를 받았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등급 심사에서 탈락(현행 기준은 가끔 기억을 잃거나 신체활동이 가능하면 경증 등급외자로 판단)하면서 모든 서비스가 중단됐다. 손녀는 학업 때문에 조부모의 곁을 떠나야 했다. 다시 부부만 남았다. 월세는 700만원이나 밀렸다.
사회복지사의 방문
올해 5월 어느날 경기 시흥시 함현상생종합복지관 은빛사랑채의 유성자 센터장이 부부의 집 문을 두드렸다. "치매 노인이 있다, 집은 모른다"는 주민들의 신고와 "등급 탈락으로 방치되는 모습이 안타깝다"는 방문간호사 민정아씨의 의뢰로 찾아나선 길이었다. 문은 열리지 않았다. '등급외자 전용 주간보호센터'라 전액 무료라고 설득했지만 문 뒤에 숨은 할머니는 "도움은 필요 없다"고 거절했다.
3번째 방문 때 겨우 문이 열렸다. 거의 6개월 만에 도움의 손길이 노부부에게 가 닿은 것이다. 부부의 상태는 다시 입에 담기 죄스러울 정도로 심각했다. 유 센터장 등은 음식을 입에 넣을 수 없을 만큼 자란 김씨의 수염을 깎아주고, 대소변 얼룩이 진 이불을 3번이나 빨았다. 목욕, 세탁, 식사 배달, 병원 진료, 강아지 관리 등이 매일같이 이뤄졌다.
그러나 부부는 경증 치매노인 전용 주간보호센터인 은빛사랑채에 나가는 것만큼은 거부했다. 9번째 방문 뒤 손녀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현관문 열쇠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6월로 접어든 10차 방문 때 열쇠를 바꿔 달아주자 할머니는 센터에 나가겠노라고 약속했다. 지속적인 관심이 마음의 자물쇠마저 푼 셈이다. 그렇게 서너 달이 흘렀다.
기자와의 동행
10월 그날 오전도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밖에 버스가 기다렸지만 할머니는 센터에 가기 싫은 눈치였다. 할아버지는 속옷 차림으로 힘없이 앉아 아침거리로 과자를 먹고 있었다. "어제 전화로 약속했잖아요."(복지사) "내가 언제." "가서 식사하셔야죠." "배 안 고파." 기억을 잃은 남편과 의욕을 잃은 부인을 센터에 데려가기 위해선 매일 설득작업이 필요했다.
부부는 마지못해 옷을 주섬주섬 입더니 복지사들의 부축을 받고 버스에 올랐다. 할머니는 큐빅이 45개나 박힌 머리띠로 단장을 했다. "손녀가 사 준거야." 버스에서 내린 부부는 손을 꼭 잡고는 센터로 들어갔다.
생활체조, 그림 그리기 등 수업이 진행됐지만 부부는 관심이 없다. 할머니는 멀찍이 소파에 앉았고, 할아버지는 벌써 침대에 누웠다. 할아버지에게 "할머니는 어디 있어요"라고 묻자 "집에 있어"라고 한다. 할머니는 뭘 물어도 좀체 답이 없다. 동료 어르신들이 말을 건네도 부부는 묵묵부답, 무표정이다. 붙박이마냥 반나절이 가는 동안 센터에서 보여준 사진들 속 부부의 활짝 웃는 모습은 도무지 목격할 수 없었다.
점심을 먹고 센터 활동이 부부에게 정말 도움이 될까 의문이 들 무렵, 할머니가 움직였다. 화투 놀이가 시작되자 한 자리를 차지한 것. "점에 10원이라 재미는 없어"라면서도 한참 집중하더니 말도 많아졌다. "우리 애들 공부 잘했어. 할아버지는 화물차 운전하고 개인택시 해서 돈도 많이 벌고…. 옛날 얘기 해서 뭣해, 할아버지는 기억도 못하는데. 그냥 사는 거지." 할아버지도 어느새 동료들과 어울렸다.
이날 부부가 처음 참석한 마지막 수업, 부부의 낯에 살짝 미소가 살아나더니 어느 순간 활짝 웃음꽃이 피었다. 낯설고 아름답다. 국가마저 외면한 등급외 경증 치매 노인 주간보호센터 존재에 대한 의구심도 풀렸다. 그 웃음이면 족하다.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은 지난해 말부터 치료와 관리만 잘하면 치매 진행을 지연시킬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등급외 판정을 받은 저소득층 경증 치매 노인을 지원하고 있다. 덕분에 전국의 김씨 부부 같은 치매 노인 150명이 잃어버린 웃음을 되찾았다.
웃음 하나에 괜한 호들갑이라고 여길 수도 있겠다. 김씨 부부의 손녀가 센터에 보낸 편지 한 토막을 전한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소소한 재미를 알아가기 시작했어요. 할머니에게 전화하면 이야기를 듣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입니다. 무슨 연극을 보았고, 노래자랑도 했고, 물리치료도 받았고…. 문득 두 분이 웃음과 말이 많아지셨단 걸 느끼곤 합니다. 치매와 우울증 증상도 날이 갈수록 나아지고 있어요. 어떤 말로 감사의 표현을 전한다 해도 다 전하지 못할 것 같아요. 도움이 필요한 노인들에게 계속 서비스되길 바랍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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