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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착순 줄서기 vs 웃돈에 우선권 "정의란 무엇인가" 미국은 갈등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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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착순 줄서기 vs 웃돈에 우선권 "정의란 무엇인가" 미국은 갈등 중

입력
2012.10.1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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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서기는 미국의 대표적인 문화다. '먼저 온 사람에게 우선권이 있다'는 논리에 바탕을 둔 줄서기는 미국식 합리주의의 상징이다. 뉴욕의 민간은행들은 줄서기 문화를 은행 로비에 최초로 도입했다고 주장한다. 웬디스는 페스트푸드업계 최초로 매장에서 줄서기를 시행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이처럼 미국 사회에서 당연시했던 줄서기 문화에 돈이라는 요소가 개입하면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BBC방송이 전했다. 공항에서 일등석, 비즈니스석 등 비싼 탑승권을 구입한 승객에게 발권과 탑승 때 우선권을 주는 것은 이미 보편화했다. 하지만 '더 많은 돈을 지불한 사람에게 우선권이 있다'는 발상에 기반한 서비스가 확산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있는 물놀이공원 식스플래그스화이트워터는 지난해 7월 새로운 줄서기 시스템인 '플래시패스(Flash Pass)'를 도입했다. 추가 비용을 지불한 고객에게 줄을 서는 불편을 덜어주기 위한 것이다. 평일 25달러, 주말 30달러인 일반패스를 구입한 사람은 무선주파수인식(RFID) 기술이 적용된 녹색 팔찌를 받는다. 놀이시설을 이용할 차례가 되면 팔찌가 진동으로 알려주기 때문에 줄을 서지 않고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 입장권 가격(37.99달러)과 맞먹는 골드패스를 구입한 사람은 줄을 서지 않아도 되는 것은 일반패스와 같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절반으로 줄어든다. 팔찌를 구입하지 않은 입장객들은 8개의 물놀이시설을 이용할 때마다 줄을 서야 하는데, 주말 등 사람이 붐빌 때는 물놀이시설 한 개를 이용하는데 한 시간 이상 기다려야 한다. 미국 온라인매체 이그재미너는 플래시패스를 소개하며 "길게 늘어선 사람들을 뒤로 하고 물놀이시설을 이용하는 것에 죄의식을 느끼지만 꽈배기 모양의 미끄럼틀을 통과해 풍덩 빠질 때면 죄의식도 사라진다"며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것을 꺼려하는 소심한 사람에게는 권하고 싶지 않다"고 전했다.

추가 비용을 내면 줄서기에서 혜택을 주는 서비스는 공공영역으로까지 퍼졌다. 애틀랜타시는 지난해 10월 상습 정체구간인 I-85 고속도로에서 '피치패스(Peach Pass)' 전용차선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피치패스는 기존의 다인 탑승차량 전용차선을 전환한 것인데, 다인 탑승조건을 2인 이상에서 3인 이상으로 바꾸고 운전자만 탄 차량도 통행료를 더 내면 전용차선을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시민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이에 반대하는 한 남성은 블로그에 "예전에는 등교하는 딸을 내려주고 출근하는데 한 시간이 안 걸렸지만 새 시스템 도입 첫날에는 (전용차선을 이용할 수 없게 돼) 한 시간 반이 넘게 걸렸다"며 "전용차선을 이용하려면 매달 120달러 정도를 추가로 지출해야 하기 때문에 딸을 데려다 주는 것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반면 피치패스를 이용하는 디자이너 클린트 카너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정확한 시간에 출근할 수 있다"며 "내게 시간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했다.

돈을 내면 줄서는 불편을 줄여준다는 착상은 학교에서는 더 거센 논란을 일으켰다. 캘리포니아주 산타모니카칼리지는 최근 몇 년간 예산이 줄자 강의 수를 줄였다. 이에 정원이 넘치는 과목이 많아지면서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학생들이 강의실 앞에 줄서는 풍경이 곳곳에서 펼쳐졌다. 그러자 학교 측은 올해 초'어드밴스 유어 드림스(Advance Your Dreams)'라는 프로그램을 추진했다. 학점당 180달러를 추가로 부담하는 학생에게는 지정좌석을 제공해 줄을 서지 않고 수업을 들을 수 있게 하고, 여기서 생기는 수입은 강의를 늘려 정원이 넘치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쓰겠다는 것이다. 추이 창 총장은 "여유가 있는 학생이 비용을 내서 다른 학생들을 돕는 로빈 후드 같은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학생들의 생각은 달랐다. 학생회는 새 프로그램이 가난한 학생을 차별하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학생들은 4월 학교 이사회가 열리는 날 새 제도 도입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경찰이 최루가스 등을 동원해 진압에 나서면서 학생 2명이 병원에 실려가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결국 주 당국은 학교에 새 제도 도입을 보류하라고 통보했다.

피치패스 전용차선에 반대 입장인 커트 톰프슨 조지아주 주상원의원은 "추가 비용을 낼 수 있는 사람에게만 선택권을 주는 제도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분리시킨다"며 "건국의 아버지들은 이런 반미국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창 총장은 "선택의 자유는 미국에선 기본적 권리"라며 "비용을 지불한 사람이 선택권을 갖는 것이 공정함을 해친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돈이 줄서기를 대신하는 현상을 놓고 '공정한 기회를 중시하는 미국'과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미국'이 충돌하고 있다.

류호성기자 r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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