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미국과 2년여의 협상 끝에 이른바 한미간 미사일지침을 개정해 종전 300km의 미사일사거리를 800km로 연장했다고 자축분위기에 젖어 있을 무렵 때 아닌 북한 병사 '노크 귀순'사건으로 군의 위상을 크게 실추시키는 악재가 발생했다. 문제는 현역 군의 최고 수장인 합참의장이 이러한 사실을 일주일 동안이나 모르고 있다가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처음 알게 됐다는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군 당국은 처음엔 폐쇄회로(CC) TV를 통해 귀순자를 발견했다고 밝혔다가 후에 CCTV는 고장나 녹화가 안됐고 철책경계에 사용되는 열상관측장치(TOD) 녹화영상에도 포착되지 않았다고 정정 발표하는 해프닝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합참 지휘통제실, 정보본부, 전비태세검열실, 1군사, 기무사 등 여러 군 지휘라인과 유관부서로부터 제대로 된 보고를 받지 못했다는 것은 충격적인 사실이 아닐 수 없다.
금년에 33조원의 국방비를 쓰고 그 중 10조원이 방위력 개선사업에 배당되었다는데 동부전선 22사단 소초에 설치된 CCTV는 현지 부대가 "자체 예산으로 그나마 경계태세를 보강하기 위해 5만1,000원에 시중에서 구입한 저성능 카메라"라는데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 65만명에 달하는 군의 지도부는 국민에게 석고대죄하는 마음으로 응분의 도의적 책임을 져야할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유사한 '노크 귀순'이 4년 전인 2008년에도 발생, 북한 정치장교가 철책을 넘은 뒤 자신의 위치를 알리려고 권총까지 쏜 뒤 GP를 노크했던 사실이 밝혀지고 이외에도 2009년, 2010년에도 보도되지 않은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는 것이 알려졌다.
유사시 한반도와 같은 지형에서의 현대전은 비대칭 전력에 의한 비대칭전(asymmetric warfareㆍ게릴라 등 비정규전 포함)이 주가 될 것이기 때문에 이는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 속담에 "손에 가시 든 건 알아도 간에 곰핀 건 모른다"라고 했던가.
요컨대, 우리에게는 지금 미사일사거리 연장이 아니라 155마일 휴전선 문단속이 더 중요하다. 미사일 문제는 사거리를 연장할 게 아니라 한미 양국간 미사일 지침 자체를 폐기했어야 마땅하다. 여기서 미사일 지침을 폐기하자는 것은 주권국가로서 당연히 자주국방의 권능과 권한을 찾아와야 한다는 뜻이다(김태효 전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이 최근 모 언론에 밝혔듯이 정부가 올해 들어 4번 넘게 폐기선언을 하려했다는 것은 그 필요성을 반증하는 것이다).
한국이 이번 기회에 지난 33년간 주권국 한국에 채워진 족쇄(한미 미사일지침)를 풀어버리는 것이 명실상부하게 양국의 국익에 부합하는 일이였는데 결국 실기한 셈이다.
현재 국제사회의 미사일 규제는 미국을 주축으로 한 선진국 중심의 수출통제체제 즉, MTCR(미사일기술통제체제, 1987년)가 있고 나중에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범세계적인'헤이그 탄도미사일확산방지 행동규약'(HCoC, 2002년)이 만들어졌다.
MTCR은 34개 회원국(한국포함)들이 사거리 300km, 탄두중량 500kg이상의 탄도미사일관련 기술이나 부품, 완제품 등을 제3국으로 이전하는 것을 통제하는데 이러한 규제조항을 만든 장본인격인 미국이 한국에 사거리를 두 배 이상 늘리도록 허용하는 것은 분명 자가당착의 행위이다. 즉, MTCR의 기본 지침에 어긋난다.
이밖에 미국, 한국, 북한 등 134개국이나 가입한 범세계적인 탄도미사일통제 규범인 HCoC의 근본 취지에도 위배되는 것이다.
한편, 유사시 한반도에서의 비대칭전을 상정할 때 장거리 탄도미사일은 심리적 위안은 될지언정 실효성이 떨어진다. 다시말해 남한의 인구와 경제력의 과반이 몰려 있는 수도권 일원이 적의 핵, 화학 생무기는 차치하고 장사정포 사거리 안에 들어와 있는 상황에서 실익이 적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북한의 비대칭전에 대비한 휴전선 일대와 3면이 바다인 북방한계선(NLL) 이남의 해안 경계태세 강화이다. 왜 이걸 모르나.
김경수 국제갈등분쟁연구소 대표 ·전 명지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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