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내장 확인을 위해 반려견 '꿀꿀'(9·시츄)과 찾은 한 대형동물병원. 동네 병원에서 백내장인 것 같다는 의견을 듣고 비싸긴 하겠지만 안과전문 수의사와 고급 검사장비가 있는 곳에서 확실한 진단을 받겠다는 생각에 대형동물병원을 찾았다. 병원 안엔 카페와 투명 유리로 된 반려견 놀이터, 미용실 등이 눈에 띄었다.
검사는 상담실이 별도의 검사실에서 진행됐다. 30분 가량의 검사시간이 흐른 뒤, 담당 수의사는 '꿀꿀'의 왼쪽 눈이 백내장 초기라고 진단했다. PC화면에 올라온 안구 내부 사진에 작은 흰색 부분이 보였다.
청구된 진료비는 11만9,000원. 진찰비 1만원, 신체검사 1만2,000원, 안검사(눈물량검사) 1만3,000원, 안검사(형광염색) 1만3,000원, 안검사(안압측정) 2만원, 안약 1만1,000원에 피부병 약값 4만원이 더해진 것이다. 보험처리가 되지 않으니, 사람들이 다니는 병원보다 확실히 비쌌다.
우리나라에서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인구는 1,000만명이 넘는다. 개 450만마리, 고양이 63만마리를 포함해 모두 500만 마리의 반려동물과 함께 살고 있다. 이젠 애완동물이 아니라 말 그대로 사람의 동반자 반려(伴侶)동물인 셈이다.
동물은 기르다 보면 정이 든다. '사람은 등을 돌려도 동물은 배반하는 법이 없다'는 사실을 누구나 안다. 기쁨과 위안은 줘도 슬픔과 분노를 주는 법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려동물에 대해선 지금도 엇갈린 두 개의 시선이 존재한다. 하나는 동물들이 너무 호사한다는 시각. 이런 시선에선 '꿀꿀'이 찾아갔던 고급병원도 못마땅하기만 하다. 굶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아파도 병원에 못 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한낱' 동물들이 값비싼 사료에 미용, 병원까지 다니는 걸 보면 막말로 '돈 지랄한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에서 브라우니를 데리고 나오는 정 여사 같은 이미지랄까.
다른 하나의 시각은 동물도 어엿한 가족이고, 그런 만큼 가족처럼 대우하는 건 당연하다는 것. 가족이니까 가급적 맛있는 음식을 주고, 아프면 좋은 병원에 데려가는 게 이상할 것은 없다는 것이다.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바뀌면서, 1~2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또 한 자녀 가정이 많아지면서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은 '가족의 일원'쪽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동물병원, 사료, 용품 등 반려동물산업도 커지고 있는데, 1995년 5,000억원이던 이 시장은 2010년엔 약 1조8,000억원에 이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반려동물산업은 개인 수의사들이 운영하는 동물병원 중심으로 이루어져있다. 동물병원에서 진료도 하고 사료와 용품도 팔고, 반려동물까지 분양한다. 전체 산업의 약 46%를 차지할 정도. 그러다 보니 서비스의 질이나 의료수준, 가격이 병원마다 천차만별이다.
반려동물에 대한 가족개념의 확산은 동물병원의 업그레이드, 마침내 종합병원과 복합문화공간까지 탄생시켰다. 대한제분 계열 DBS가 운영하는 동물병원 이리온은 수의사 1명이 모든 병을 다 커버하는 동네 병원과 달리, 내과 외과 안과 치과 등 전문의와 컴퓨터 단층촬영(CT), 망막기능 검사장비(ERG) 등 첨단 의료기기를 갖춘 말 그대로 고급 종합병원이다. 병원 안에는 대한제분이 최근 인수한 베이커리 '아티제'와 미용실, 유치원까지 들어서 있다. 이리온 청담점의 문재봉 원장은 "동네 병원에서 치료하지 못해 지방에서도 올라오는 경우도 많다"고 귀뜸했다.
프랜차이즈 반려동물시설들도 생겨났다. '쿨펫'은 직영병원인 '닥터펫'이외에 전국 이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를 중심으로 110개의 가맹 병원 겸 반려동물센터를 두고 있다. 인력구성, 직원교육 등은 본사에서 관리하되 나머지는 원장의 선택에 맡기는 식이다.
하지만 역시 문제는 비용이다. 사람과 달리 보험처리가 안되다 보니 의료비가 비싸다는 지적이 높고, 결국 이를 감당하지 못해 유기하는 사례도 발생하는 게 현실이다. 국내 보험사들은 지난 2008년 애견보험을 앞다퉈 내놓기도 했지만, 워낙 손해율이 높아 지금은 대부분 접은 상태다. 삼성화재가 지난해 11월 반려동물의 상해와 질병을 보장하고, 반려동물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혔을 때 보상해주는 보험상품을 다시 출시했다.
반려동물 문화가 발달한 선진국이라고 해서 의료비가 저렴한 것은 아니다. 미국의 동물의료비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높다. 다만 프랜차이즈 병원이 발달되어 있어 의료비용이나 서비스의 질이 비슷하고, 반려동물을 쉽게 사고파는 게 아니라 가족으로 돌보는 문화가 정착되어있다는 점이 우리와 다르다. 남정우 쿨펫 사장은 "미국의 경우 자체병원에서 일정 회비를 내면 진료비를 깎아주는 방식의 회원제를 운영해 의료비를 낮춰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지난해부터 정부가 동물진료비에 부가세 10%를 부과하는 것은 타당치 않다는 지적도 있다. 부가세 부과로 결국 반려동물 의료비부담이 늘어나게 된 것인데, 세수확보차원이라고는 하나 아무리 동물이라도 생명을 다루는 진료비에 부가세를 과세하는 건 타당치 않다는 것이다. 동물보호단체인 동물자유연대의 이형주 팀장은 "진료비에 부가세가 붙는 나라는 많지 않다"며 "반려동물을 기르는 저소득층에겐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집에서 기르는 개나 고양이를 통상 애완동물로 불렀지만, 최근에는 반려동물이란 말이 쓰이고 있다. 반려동물(companion animal)이란 1983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관한 국제 심포지엄'에서 제안한 용어. 미국, 유럽, 일본 등 대부분의 국가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국내에선 최근에서야 확산되고 있다.
고은경기자 scoopkoh@hk.co.kr
안나경 인턴기자 (숙명여대 정보방송학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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