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일터 매개하는 실핏줄… 연애·휴식·잡담·업무…천태만상의 표정들 출입… 도시 생태학 세련된 완성대형 프랜차이즈가 점령… 소수 마니아들 뒷전으로천문학적 커피소비 액수에 '습관적 과시·낭비' 눈총도
계획과 정책의 산물이 된 현대의 도시는 처음부터 거대하게 태어난다. 도로가 이어지면 먼저 아파트가 서고, 입주 시점을 전후해 관공서나 학교와 같은 공공시설들이 문을 연다. 대형 근린상업시설들은 주민들의 불편이 적당히 고조될 무렵 본격적인 영업을 시작한다. 그 전위는 대개 은행이다. 출장소 대신 지점이 열리고, 대형 할인매장이 생기고, 김밥천국 같은 간이 음식점과 빵집이 들어선다.
교통 결절점에 주막이 생기고 주모의 몸맵시 말맵시와 국밥 마는 솜씨가 그럴싸하다는 소문이라도 돌면 장꾼들이 몰려 즉석 장이 열리고…, 살림집들이 하나 둘 숫기 없이 들어서면서 마을이 되던 옛날과 달리, 술집이나 여관 같은 유흥업소나 그럴싸한 대형 음식점은 도시라는 공간이 어느 정도 안정화한 뒤에야 문을 연다. 미시적으로 보자면 이삿짐들이 새 집에서 제 자리를 잡고 식구들의 출퇴근길 등하굣길이 웬만큼 익숙해진 뒤, 그래서 새로운 주민들의 생산과 소비의 동선이 구축된 뒤, 유흥업소들은 거기서 그리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자리를 찾아 네온사인을 켠다. 그럼으로써 을씨년스럽기 쉬운 밤의 베드타운을 도시답게 완성한다. 유흥타운의 구축은 그러니까 도시의 외형적 완성이고, 그 업소들의 초기 영업수지는 도시계획의 성패와 도시의 성장 가능성을 판별하게 해주는 바로미터가 된다. 공간적ㆍ외형적으로 술집은 도시의 밤의 심장이다.
반면에 커피숍은 낮의 동선을 맺고 풀면서 도시의 생태학을 세련되게 완성하는 실핏줄 같은 공간이다. 낮의 혈류를 책임지는 공간은 물론 다양하다. 대학이나 특정 업무타운 등 도시에 개성을 부여하는 시설들이 있을 수 있고, 극장이나 학교, 공공도서관, 대형 할인매장 등도 그 역할을 한다. 그것들은 대개 도시의 섭생을 지탱하는, 생태학적 필수공간들이다. 거기서 커피숍은 혈류의 큰 흐름들을 매개하고 보완하면서 스쳐 흐르는 사람들의 온기와 표정을 머물게 하고, 교류하게 하는 공간이다. 그 곳은 잉여의 공간이지만, 도시의 낮에 생기를 부여하는 비타민 같은 역할을 한다. 입주를 앞둔 젊은 부부가 휴일 나들이 삼아 낯설고 창백한 신도시 공간을 둘러보면서 속절없이 불안하고 스산해지다가도 간선도로변의 넓고 목 좋은 건물 외벽에 내걸린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숍의 개점 예정 안내간판을 만나면서 내심 위안을 얻는 것도 그런 까닭일 것이다. 편의점이나 유명 빵집 또는 아이스크림 가게 간판들이 줄 수 없는 그 위안은, 커피숍이 들르는 공간이 아니라 머무는 공간이라는 인식과 무관하지 않다.
커피숍에 대한 인식(인상)은 공간의 개성들과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양하고 판이할 수 있다. 커피숍이 어떤 공간이냐고 묻자 한 동료는 "못 할 것이 없는 공간"이라고 했고, 또 한 동료는 "갈 데가 있어서 다행이다… 싶어지는 공간"이라고 했다. 누구는 "카페인이 간절히 당길 때" 간다고 했고, 누구는 "카페인을 간절히 원하는 누군가가 가자고 할 때" 따라간다고 했다. 누가 "약속 장소로 커피숍만한 데가 없다"고 하자, 누구는 "안 마시고 바로 나와도 되고…"라며 맞장구 쳤다. "급히 처리할 일이 있어서" 가는 사람도 있고, "마땅히 할 일이 없어서" 가는 사람도 있고, "수다 떨고 싶을 때"도 가고 "혼자 있고 싶을 때"도 가는 곳. 브런치 같은 간단한 식사에서부터 휴식과 토막잠 연애 잡담 일 공부 토론 음악ㆍ영화감상 …등, 커피숍은 단위공간으로는 독보적이라 할 만큼 어마어마한 수요를 충족시켜주는 공간으로 자리잡았고, 몇 년 전 한 다국적 커피 프렌차이즈 업체가 한국 시장을 공략하면서 내건 '제3의 공간'이라는 케치프레이즈를 거의 완벽하게 실현했다. 그럼으로써 과거 우리가 만남의 거점으로 익숙하게 이용하던 'OO건물 앞'이나 'OO빵집 'OO다방'등을 제압하고, 집과 일터를 매개하는 거대한 사이공간의 상징이미지를 거머쥐었다.
지금의 원두커피숍들이 다방'이 아닌'커피 전문점'이라는 이름으로 공간의 지위를 차별화하며 손님으로 하여금 고양된 취향을 자부할 수 있게도 해주던 게 1980년대다. 그게 급속히 확산된 시점은 1999년 7월, 스타벅스가 이화여대 앞에 첫 매장을 열면서부터다. 원두커피 인기와 프랜차이즈 경쟁으로 커피숍은 어느 새 서울 지방 할 것 없이 지천으로 들어섰고, '다방'은 제 희소성과 향수의 취향을 애써 부각시키거나 아예 변칙적인'유흥'의 영역 속으로 은신했다. 한 민간 연구소 조사 결과 전국의 커피숍은 지난 해 말 현재 약 1만2,000여 개에 이르러 2006년의 1,254개에 비해 5년 새 10배 가량 늘어났다. 이제 오지의 바닷가에서도 어렵지 않게 자신이 원하는 산지의 커피를 골라 마실 수 있고, 해발 고도 1,000미터가 넘는 지리산 성삼재 입구에서도 유명 체인점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됐다.
한국인의 커피 애호는 다국적 커피업계조차 놀랄 정도라는 사실도, 커피숍이 이미 포화상태를 넘어섰다는 사실도, 이미 새로운 소식은 아니다. 관세청 집계 결과 원두 수입량은 지난 해 말 약 13만 톤으로 2007년 9만여 톤보다 43% 넘게 증가했고, 금액으로는 2억3,100만 달러에서 7억1,700만 달러로 3배 넘게 늘어났다. 양도 양이지만, 소비 추세가 급격히 고급화했다는 의미다. 원두 수입량으로 추산한 바, 지난 해 대한민국 20세 이상 국민은 1인당 평균 338잔의 커피를 마셔 무려 4조3,700억 원 대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커피전문점 2조4,000억원, 커피믹스 1조1,000억원, 커피음료 8,700억원;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
홍콩에 오래 살고 있는 한 지인은 "점심 먹고 습관적으로 커피숍 가고, 사람 만나면 약속이나 한 듯 커피숍에 들르는 게 이상하다"고 했다. 홍콩 시민들은 대부분 한 자리(대개 식당)에서 느긋하게 밥 먹고 담소까지 나눈 뒤 일어선다며, 한국 사람들은 커피숍이 이렇게 많아지기 전에는 밥 먹고 뭐했는지, 낮에 친구 만날 때는 어디서 어떻게 만났는지 궁금해했다. 아니 '습관적 낭비'나 과시를 은근히 꼬집었다. 재무설계사들이 즐겨 인용하는 '라테 효과'라는 것도 있다. 하루 커피 한 잔을 덜 마시면(혹은 담배 한 갑을 덜 피우면) 10년 뒤에 얼마의 목돈을 쥐게 된다는 식의, 트집 잡기 힘든 수학적 진실들. 커피의 유명세라 해도 좋을 그런 지적들은 늘 빠듯한 용돈 사정과 불안한 미래를 환기시키고, 또 심심찮게 보도되는 커피 원가(原價) 시비나 품질ㆍ서비스 불만 등 반발심과 겹치면서 어렵잖게 호응을 얻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저 지적들이 모든 이에게, 또 모든 경우에 일반화할 수 없는 사실 위에 서 있다는 점도 분명하다. 예컨대 커피 한 잔 값이 대학생 아르바이트 시급 수준이지만, 서너 시간 길게는 대여섯 시간씩 머물며 자유롭고 쾌적하게 뭐든 할 수 있는 공간을 사는 그 비용과 삭막한 도서관의 공짜 시설을 비교하는 것은 억지스럽다. 비용 급부의 득실과 훈계의 옳고 그름을 떠나, 커피 한 잔의 여유 혹은 사소한 사치조차 시비 거는 사회의 위선에 대한 반감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유래담과 전래사를 보다 보면 커피는 그 모호한 약성(藥性)과 매혹적인 향기로 하여 꽤 오랜 동안 신비로운 존재였던 듯하다. 흥분 각성 등의 기능적 존재에서 어느 새 기호품으로, 이제는 어엿한 문화적 존재로 자리잡았지만, 커피는 그 위세의 근원만큼이나 여전히 모호한 존재인 듯하다. 효능을 둘러싼 다양한 긍정적ㆍ부정적 소식과 정보들이 지금도 심심찮게 소개되는 것을 보면 인류는 아직 커피의 실체를 충분히 파악하지는 못한 모양이다.
어쨌거나, 몸에 좋든 궂든 카페인 함량과 칼로리 따지지 않고 오직 커피가 좋아서 마시는 이들도 있다. 커피는 비약적으로 고급화하고 커피숍은 늘어났지만, 그런 이들이 원하는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커피숍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흔한 역설, 아니 대중화의 정설이 그들은 못마땅할지 모른다. 소수의 커피마니아들 사이에서 에스프레소 맛이 빼어나다거나 독특하다는 평을 얻고 있는 서울의 몇 안 되는 커피숍들은 대개 일 삼아 찾아가야 하는 동네로 밀려났고, 맛으로 그 명성을 확인하고 원액 추출 장비와 드립 요령을 견학(?)하려는 손님들로 하여 교실처럼 진지하거나 고급 취향을 공유한 소수 단골들의 아지트처럼 배타성을 띠기도 한다.
슈퍼 블록들이 아니라 지름길과 삐뚜름한 골목들이 얽혀 있어 동선의 선택폭이 넓은, 그래서 자주 나타나는 길 모퉁이에서 도시민들의 자연스러운 만남이 이루어지는 신도시. 요컨대 오래된 미래가 구현된 계획도시가 우리에게는 없다. 도시 생태학자 제인 제이콥스가 이라는 책에서 건강한 도시의 지표로 제시한 다양성과 활기는 딱딱한 나무나 철제의자로 수백 석씩 갖춘 대형 프렌차이즈 커피숍이 아니라 길 모퉁이의 작고 개성 있는 커피숍들로 완성되는 것일지 모른다. 또 레이먼드 챈들러가 자신이 창조한 하드보일드의 영웅 필립 말로를 유비(類比)했던 유일한 존재로서의 그런 커피도 아마 그런 공간에서나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진하고, 강하고, 쓰고, 끓을 정도로 뜨거우며 가차없고 타락한 커피. 지쳐버린 남자의 인생의 피."(에서)
최윤필 선임기자 proos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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