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1부(주심 양창수 대법관)는 1991년 발생한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에 대해 검찰의 재항고를 기각하고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고 19일 밝혔다.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1991년 5월8일 서강대 건물 옥상에서 김기설(당시 25세)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사회부장이 노태우 정권 퇴진을 외치며 분신하자 검찰이 김씨의 동료였던 전민련 총무부장 강기훈(48)씨가 유서를 대신 써주며 자살을 방조했다며 기소, 수사 및 공판 과정에서 뜨거운 진실공방이 벌어진 사건이다.
과거사 청산 차원에서 진행된 이 사건 재심 청구 과정에서도 검찰은 서울고법의 재심 결정에 대해 이례적으로 재항고했고, 대법원의 재심리에만 3년여가 걸리는 등 진통이 거듭됐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소속 문서감정인들의 공동심의에 관한 증언 내용 중 일부가 허위라고 보아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2호가 정한 재심 사유(원판결의 증거로 사용된 증언, 감정, 통역 또는 번역이 확정판결에 의해 허위인 것으로 증명된 때)가 인정된다고 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재판부는 서울고법이 '유서가 김기설씨의 필적과 동일하고 강기훈씨 필적으로 볼 수 없다'는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의 감정 결과를 강씨의 무죄를 인정할 명백한 증거에 해당한다고 본 것과 달리, "진실화해위의 감정 결과를 (강씨 유죄 증거로 채택됐던) 국과수의 감정결과보다 객관적으로 현저히 우월한 지위에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서울고법에서 시작될 재심 재판에서는 진실화해위가 채택한 필적감정 결과를 놓고 또 다시 강씨 측과 검찰 간의 법정 공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1991년 당시 강씨는 국과수의 필적 감정 결과에 따라 김씨의 유서를 대신 써주고 자살을 방조한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돼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만기 복역 후 출소했다. 이후로도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이 사건에 대해 진실화해위는 2007년 11월 "김씨의 필적이 담긴 '전대협 노트'와 '낙서장'을 새로 발견해 국과수 및 7개 사설 감정기관에 필적 감정을 의뢰한 결과, 유서의 필적은 김씨 본인의 것이라는 감정 결과를 통보받았다"며 재심 권고 결정을 내렸다. 강씨는 2008년 1월 재심을 청구했고, 서울고법은 2009년 9월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지만 검찰이 즉시 재항고해 대법원 심리가 진행돼 왔다.
김영화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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