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親日)의 유산을 일본에 묻어두었기 때문일까. 해외에 10억원 이상 금융계좌를 보유한 국내 자산가 가운데 일본 금융기관에 돈을 예치한 규모가 1인당 평균 27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방 이후에도 일본 경제의 영향이 절대적이던 1960~70년대 국내 정치권과 재계 인사들이 다양하게 조성한 거액의 비자금을 일본에 은닉해 왔다는 소문이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18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가 기획재정부에서 제출 받아 공개한 '개인 해외계좌 국가별 분포현황'에 따르면 국내 거액 자산가 34명이 일본 금융기관에 9,188억원 규모의 계좌를 보유 중이라고 신고했다. 개별 예치액이 공개되지 않아 편차가 있을 수 있지만 1인당 평균 270억원가량 보유한 셈으로, 144명이 5,680억원을 예치하고 있는 미국(1인당 39억원)보다 8배나 많은 것이다.
재정부는 역외탈세와 불법 자본유출을 막기 위해 2011년부터 잔액이 10억원을 넘는 금융계좌를 해외에 보유한 개인이나 법인에 대해 과세 당국에 의무적으로 신고토록 하고 있다.
재정부 관계자는 "5.16 쿠데타 등으로 정경 유착이 지금보다 훨씬 심했던 1960~70년대 정치인, 고위관료, 기업인 등 사회 고위층이 조성한 비자금이 일본에 맡겨져 있다는 게 정설이었는데, 아직도 일부가 남아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는 "1990년대 들어 미국과의 금융 교류가 활발해지기 이전에는, 고령(高齡) 자산가들이 일제 강점기 시절 연고가 있는 일본 금융기관에 비자금을 맡기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일본에 거액 자금이 몰려 있는 현상은 법인 해외계좌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일본에 계좌를 갖고 있다고 응답한 70개 국내 법인이 보유한 총 5조2,234억원에 달했는데, 이 역시 미국(73개 법인ㆍ1조4,389억원)보다 3배 이상 많은 규모다.
한편 재정부에 따르면 해외계좌 신고제도가 첫 도입된 2011년 525개 법인ㆍ개인이 11조5,000억원을 신고하는데 그쳤으나, 스위스와 조세피난처 등 외국 과세당국과의 협력이 강화되면서 2012년에는 10월 말 기준으로 신고 법인ㆍ개인(652명)과 신고액(18조6,000억원) 모두 급증했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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