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의 '살아있는 전설' 김응용(71) 감독이 8년 만에 현장으로 돌아왔다. 2002년 삼성 감독으로 LG를 4승2패로 꺾고 한국시리즈 정상에 오른 뒤 적장인 김성근 감독을 극찬해 '야신(野神)'의 호칭을 안겨줬던 그다.
하지만 1982년 출범해 31년째를 맞이한 프로야구에서 감독으로서는 김응용 한화 감독의 기록을 능가할 맞수는 없다. 김 감독은 2004년 그라운드를 떠나기 전까지 22시즌 동안 2,653경기에서 1,463승65무1,125패를 기록했다. 승률은 5할6푼5리에 불과하지만 프로야구 최장수이자 최다승 사령탑이다. 특히 김 감독이 달성한 '한국시리즈 10승 신화(해태 9승, 삼성 1승)'는 당분간 깨지기 힘든 대기록이다. 더욱이 프로야구 선수 출신으로 최고 경영진까지 오른 '살아있는 전설'이다.
그런 김 감독이 한화 구단의 러브콜을 받고 흔쾌히 일선에 복귀했다. 최근 4시즌 동안 무려 세 차례나 최하위에 그친 한화는 김 감독의 풍부한 경험과 카리스마가 팀의 리빌딩에 맞아 떨어진다고 판단한 듯 하다. 우승 청부사 김 감독을 영입한 한화는 프로야구 사상 처음으로 70대 감독 체제로 내년 시즌을 맞게 됐다. 김 감독은 만 71세의 나이로 국내 프로스포츠 사상 최고령 감독이라는 훈장까지 달게 됐다. 독립구단인 고양 원더스를 이끌고 있는 김성근 감독이 한 살 아래다.
국내에서는 70대 감독이 드물지만 외국에서는 경험이 풍부한 노(老)감독이 대접을 받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던 감독은 코니 맥 감독이다. 맥 감독은 1901년부터 1950년까지 무려 50년간 필라델피아를 이끌다 87세8개월7일의 나이로 은퇴했다. 통산 3,731승. 지난 해에는 81세였던 잭 매키언 감독이 주목 받았다. 그는 시즌 도중 플로리다의 임시감독으로 부임했다. 2003년부터 2005년까지 3년 간 플로리다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매키언 감독은 메이저리그 사상 두 번째 최고령 감독의 기록을 갖게 됐다. 일본 프로야구 최고령 감독은 2009년을 끝으로 물러난 당시 74세 노무라 가쓰야 라쿠텐 이글스 감독이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26년째 이끌고 있는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김응용 감독과 동갑이다.
한 때 '40대 기수론'의 광풍이 강타한 적이 있는 프로 스포츠계에서 노감독이 살아남는 이유는 풍부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리더십 덕분이다. 한비자(韓非子) 세림(說林)편에 나오는 '노마식도(老馬識道)'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늙은 말이 길을 안다'는 뜻으로 춘추시대 제(齊)나라 재상 관중(管仲)이 고죽국 공격에 나섰다가 귀로(봄에 떠나 겨울에)에 그만 길을 잃었을 때 늙은 말을 풀어 놓아 길을 찾고는 그 지혜를 칭찬한 데서 유래한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김 감독은 15일 선수단과의 상견례 및 기자회견에서 "프로는 제대로 못하면 죽는다"며 "우승 아니면 목표가 없다"고 취임 일성을 던졌다. 김 감독은 코칭스태프를 꾸리는 등 패배의식에 젖어 있는 한화의 리빌딩에 착수했다. 김 감독은 먼저 김성한 수석코치, 김종모 타격 코치, 이종범 주루코치 등 카리스마 있는 해태 출신 제자들을 끌어 모았다. 김 감독 사단이 근성 있었던 해태 타이거즈 문화를 한화에 접목시킬 수 있을 지가 관건이다. 김 감독은 2001년 우승에 목마른 삼성의 감독으로 부임해 이듬해 사상 처음으로 감격적인 한국시리즈 우승을 안겨준 전례가 있다. 김 감독이 해결해야 할 현안은 산적해 있다. 박찬호의 은퇴 및 류현진의 메이저리그 진출 여부 등이 그의 결단을 기다리고 있다.
김 감독은 '2~3년 안에 우승하겠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한화는 99년 우승, 2006년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이후 가을야구와 거리가 멀었다. 과연 김 감독이 한화야구단에 자신의 색깔을 입히면서 환골탈태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기대된다. 노감독의 지혜가 패배의식에 젖어 있는 한화를 정상으로 이끌 수 있을까.
여동은 스포츠부장 dey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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