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리 로크(62ㆍ사진) 주중 미국 대사가 티베트의 독립을 요구하며 승려들이 잇따라 분신한 쓰촨(四川)성의 아바현을 방문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미국이 티베트 독립운동을 한때 적극 지원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중국의 지도부 교체를 앞둔 민감한 시기에 이뤄진 이번 방문이 예사롭지 않다는 게 외교가의 시각이다.
중국 환구시보(環球時報)는 18일 로크 대사가 지난달 아바현을 찾았다고 보도했다. 쓰촨성은 티베트(시짱·西藏) 자치구와 인접한 탓에 티베트인이 많이 거주할 뿐 아니라 티베트인의 분신 저항과 반중 시위가 빈발하는 지역이다. 전체 인구 5만명 가운데 티베트인 비율이 90%가 넘는 아바현은 티베트인의 분신이 잇따르며 독립 운동의 성지로 떠오르는 곳이다.
로크 대사는 아바현에서 티베트인을 두루 만나고 티베트 불교 사찰도 방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인터넷에서는 그가 티베트 승려와 찍은 사진 등이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다.
빅토리아 눌런드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앞서 16일(현지시간) 로크 대사의 아바현 방문을 확인한 뒤 "미국은 티베트인 분신 증가를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으며 중국 정부가 그들과 대화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로크 대사의 아바현 방문과 눌런드 대변인의 발언은 미국이 아시아 복귀를 선언한 뒤 미국과 중국의 충돌이 잦아지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주목된다. 내달 8일 열릴 중국공산당 제18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최고 지도부 교체가 예정된 가운데 중국 정부가 그 어느 때보다 사회 안정에 심혈을 기울이는 시기에 그가 티베트 독립 운동의 중심지를 찾았다는 것은 중국에게 불쾌한 일이다.
중국의 사법분야 수장인 저우융캉(周永康) 상무위원 겸 정법위원회 서기가 14, 15일 쓰촨성을 시찰하며 국가 안보와 정치ㆍ사회 안정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면서 법 집행을 강화하라고 지시한 것도 로크 대사의 행보를 염두에 둔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티베트인들이 로크 대사의 방문에 자극 받아 반정부 시위에 나설 경우 엄정 대처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인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해 8월 부임한 로크 대사는 중국에겐 줄곧 눈엣가시였다. 그는 4월 시각장애 인권운동가 천광청(陳光誠)이 산둥(山東)성 자택을 탈출, 베이징(北京)의 미국 대사관으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독자적으로 대기 오염도를 측정, 인터넷을 통해 공개하고 있다. 부임 당시 수행원 없이 배낭을 메고 입국하고 이후 이코노미석을 타고 출장을 다니는 등 그의 서민적 풍모가 네티즌의 큰 호응을 얻고 있는 것도 중국 당국으로서는 부담이다.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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