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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10월 19일] 제왕에서 식물 대통령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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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10월 19일] 제왕에서 식물 대통령으로

입력
2012.10.18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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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부동(五獸不動)은 쥐 고양이 개 범 코끼리, 이 다섯 짐승이 서로 두려워하고 꺼려 꼼짝도 못하는 상황을 일컫는 말이다. 대통령 5년 단임제인 지금 헌법을 생각하면 1987년 당시 유력한 대선후보 세 명이 서로 견제하다가 타협을 통해 만들어낸 삼수부동(三獸不動)의 작품인 것처럼 생각된다.

민주항쟁의 산물인 이른바 87년 체제가 이미 낡았으며 시대에 맞지 않으니 고쳐야 한다는 주장은 간단없이 제기돼 왔다. 한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대통령 4년 중임제로 헌법을 고치자는 제안이 두드러졌다. 특히 2012년에 총선과 대선이 한 해에 실시된다는 점에서 대통령의 임기와 국회의원의 임기가 같아지도록 함으로써 정권 운용의 효율을 높이고 국력 낭비도 막자는 논의가 무성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초기에 활발했던 개헌 논의는 결실을 거두지 못한 채 18대 대선이 딱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논의가 비교적 자유로운 시기에는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대선이 임박해서는 그 이해관계가 더욱 엇갈려 정치적 저의를 의심하며 왜 하필 지금 개헌을 말하느냐는 공방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여야 원로 17명이 17일 촉구한 '4년 중임제 분권형 개헌론'은 얼마나 동력을 얻을 수 있을까. 이들은 국회의장 국무총리 정당 대표 등을 지낸 분들이어서 정치적 행정적으로 개헌의 필요성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된다. 특히 여와 야를 망라한 원로들이 특정 단체에 묶이기를 거부하고 자발적으로 한데 모여 의견을 밝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들 중 한 사람은 국회의원을 6선이나 하는 동안 한 번도 같은 당이었던 적이 없다고 한다. 대통령이 바뀌면 늘 당(당명)이 달라질 만큼 우리 대통령은 제왕적이라는 것, 제왕적 대통령의 폐해가 크니 개헌을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4년 중임제 분권형 개헌론'은 이미 5년 여 전부터 개헌문제를 깊이 논의해온 민간단체 대화아카데미의 작업과도 연결돼 있다. 기초지자체에 대한 정당공천제 배제도 개헌의 중요한 골자다.

이들과 별개로 22일에는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이 조직한 '분권형 개헌 추진 국민연합'이 창립된다. 또 이미 9일에는 우리나라를 지방분권국가로 개조하자는 '지방분권개헌 국민운동'이 발족돼 활동하고 있다. 개헌 청원과 함께 대선을 앞두고 각 후보진영으로부터 개헌 약속을 받아내겠다는 전략이 비슷하다.

문제는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등 세 유력한 대선 후보의 반응이다. 원로들의 제안대로면 차기 대통령 취임 1년 이내에 대통령 4년 중임제로 개헌을 완료하고 19대 대선을 2016년 총선과 동시 실시하되 중앙정부의 권한을 대폭 지방정부에 이양하며 국회의 권한도 강화해야 한다. 18대 대통령 당선자는 19대 대선 때 중임에 도전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지만, 누가 대통령이 되든 임기와 권력을 대폭 줄여야 한다.

이런 요구에 대한 각 후보 진영의 반응은 소극적이다. 득실이 명확하지 않은 터에 섣불리 응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원론적이지만 알맹이가 없는 발언과 대응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분권형 대통령'의 분권은 지방, 입법부는 물론 행정부 내의 우두머리인 총리와의 관계 정립과 직결된다. 야권 후보 단일화의 주요 이슈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휘발성과 폭발력이 강하다.

그러나 분권이 대세인 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2012년 개헌을 놓쳤으니 2016년에라도 새로운 헌법으로 대선을 치러 나라의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가자는 주장에 세 후보 모두 귀를 기울이고 진지하게 응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5년 단임으로 인한 국정의 무리수나 실패를 덜고, 임기 초반의 제왕적 대통령이 나중엔 식물대통령이 되어 물러나는 딱한 모습을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나라의 큰 그림을 생각할 때다.

임철순 논설고문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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