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안보는 사고파는 상품이 아니다. 그러나 대선 정국을 맞아 안보 상업주의가 또다시 기승을 부리는 모습을 보면, 이왕 팔 수 있는 안보라면 잘 팔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될 수 있으면 우리의 안보에도 도움이 되고 덤으로 경제적 이익도 챙길 수 있다면 '안보 장사'라는 핀잔을 듣더라도 굳이 그 상업성을 탓할 일이 아니다.
최근 외국 학자들과 서부전선 쪽 비무장지대(DMZ) 안보 답사를 다녀왔다. 이곳에서 새삼스레 확인한 것은 DMZ만이 연출하는 독특한 긴장감과 함께 관광지로서의 DMZ, 안보 장사의 진수를 보이고 있는 DMZ였다. DMZ가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중무장된 지역으로서 MMZ(Most Militarized Zone)라는 이름이 더 잘 어울리는 이곳에 외국 관광객이 몰려 셔틀버스 정체가 벌어지고 곳곳에서 주차전쟁이 펼쳐졌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DMZ 교통정체의 주범은 최근 급격히 늘어난 중국인 관광객인 듯하다.
중국은 1994년 정전협정 무력화를 시도한 북한의 의도를 존중해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에서 철수했다. 그러나 이제 하루 수천 명의 중국인 관광객이 냉전기 북한이 파놓은 남침용 땅굴을 구경하기 위해 DMZ를 찾는다. 덕분에 경기 파주시 등 관련 지방자치단체는 위협과 위험을 파는 역설로 하루 수천만 원의 입장료를 챙긴다. 북한을 통해서도 해마다 수만 명의 중국인이 판문점을 찾는다고 하니 남북한 모두 중국의 관광 '인해전술'의 수혜를 톡톡히 누리는 셈이다. 그뿐이랴, 사실상 하루 수천 명의 '비무장' 중국인이 DMZ에 '상주'함으로써 남북한은 알게 모르게 안보를 향유하고 있다. 수많은 외국인 관광객을 사이에 두고 전쟁 운운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물론 전방의 우리 국군은 눈을 부라리고 경계해야겠지만, 물리적으로 군사분계선(MDL)의 철책을 높이 쌓는다고 '노크 귀순'이 사라지고 안보가 확보되는 건 아니다. 보다 항구적이고 질 좋은 안보는 오히려 빗장을 풀어헤쳐 안보문제 자체를 해체하는 역발상을 통해 실현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DMZ 안보관광은 실질적으로 평화를 만들어 가는, '착한' 안보 상업주의이다.
이에 비하면 요즘 정치권에서 성업 중인 안보 상업주의는 그야말로 속빈 강정이다.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이 국정감사장에서 뜬금없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회록에 노무현 대통령이 북방한계선(NLL)을 부인하는 발언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함으로써 촉발된 안보 논쟁에는 안보를 위한 건설적 주장은 없고 대선정략만 보인다. 근거가 불확실한 비밀 정상회담을 놓고 NLL에 대한 소모적 정쟁을 벌이게 되면 어떤 형태로든 북한에 대선개입 명분을 주게 된다. 여야가 사망한 노 대통령이 남긴 말의 진위를 가리기 위해, 또 '종북 올가미'를 뒤집어씌우기 위해 사생결단 편을 가른다면 결과적으로 우리 안보만 다친다.
'반공'이 국시였던 시절이 있었다. 독재정권은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국가안보 태세를 강조함으로써 정권을 유지했고 보수언론 역시 남북분단의 특수상황을 교묘하게 상업적으로 이용했다. 그들은 이 같은 안보 장사를 통해 마녀사냥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퇴행적인 반공 이데올로기에 기대어 정권을 지키고 빼앗으려는 건 민족의 앞날에 큰 죄를 짓는 일이다. 더군다나 독일의 사회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의 말처럼 안보 상황에 대한 '데이터 뱅크의 접근'이 수월해져 요즘 국민들은 쉽사리 싸구려 안보 장사에 휘둘리지 않을 정도로 똑똑해졌다. 어설픈 안보 상업주의는 안 통하는 세상인 것이다.
이번 대선에 출마한 유력 대선 후보들은 각론에서는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하나같이 안보를 주창하면서 동시에 남북대화를 재개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는 이명박 정권 5년간 겪은 남북관계의 불협화음과 이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에 대한 반성에 다름 아니며, 안보에 대한 발상의 전환을 예고한다. 그렇다면 대선 후보들은 케케묵은 안보 장사를 접고 한반도 평화구축을 위한 비전을 놓고 치열하게 논쟁하라. 이 때 DMZ에서 펼쳐지고 있는 '착한' 안보 상업주의는 중요한 참고자료가 될 수 있다.
이동준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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