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려니 하였는데 바람 쌩쌩 부는 추위가 느닷없이 닥쳤다. 두툼한 점퍼를 꺼내 입기 바빴고 양말에 맨발을 끼워 넣기 분주했다. 뚜렷한 사계절이 있기에 볼수록 정이 드는 산과 들이라고 불리던 이 나라의 분간 있음은 어디로 갔나.
그게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임을 안다지만 또한 인간의 힘으로 어찌된 일이다 싶기도 하여 코끝 시리게 지나가다 지인 한 분을 만났다. 거리에서였다. 우리는 반가움에 호들갑스럽게 손을 맞잡았고 근처 카페로 들어섰다. 못 본 동안 얼굴이 꽤 수척해졌기에 물었더니 시아버님 장례를 치르고 병이 났었다나.
죽은 자에 대한 예우를 잘 갖춘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죠. 그러자 고개를 절레절레 저는 나의 지인. 아버님 보내드리는 건 일도 아니었어요. 이십 년 넘게 지문이 닳도록 시부모님께 세 끼 새 밥 지어 올리면서 휘파람을 불던 전데요, 아무래도 욕심이었던 것 같아요. 며느리는 절대로 딸이 될 수 없는데 그걸 탐했던 거죠.
맥락을 보자니 시쳇말로 '시월드'로부터 몹시 상처를 받은 듯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시어머니와 시누이로부터 받은 모멸의 토로. 왜 남자의 적은 남자이거나 여자이곤 하는데 여자의 적은 꼭 여자일까. 외며느리로 시집 와 네 명의 시누이를 건사한 엄마, 그녀는 딸만 내리 넷을 낳았다지. 김씨 성을 가진 여자 여덟 사이에서 양씨 성을 가진 여자 하나, 알 것 좀 안다 싶어지고 나니 그 세월 참 추웠겠다 싶네. 그 쓸쓸.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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