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일 앞으로 다가온 대선이 위험 수위를 넘나드는 폭로전으로 얼룩지고 있다. 상대 후보와 진영의 과거를 들춰내는 진흙탕 공방으로 미래 비전과 정책을 주제로 한 경쟁이 가려지고 있다. 급기야 여야가 상대방의 약점을 들춰내고, 문제 삼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취득한 정보를 동원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보 취득 과정을 둘러싼 논란이 벌어지는 가운데 정가 일각에서는 "불법적으로 취득한 정보를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야권이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공격하기 위해 꺼내든 정수장학회 의혹을 두고 새누리당은 "범죄 행위인 '도청'과 '도촬'이 동원됐다는 의혹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를 궁지에 몰기 위해 여당이 꺼내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 논란도 마찬가지다. 야권은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 등을 겨냥해 "국가기밀을 불법적으로 활용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안철수 무소속 후보는 자신에 대한 검증 과정에 불법적 방법으로 입수된 개인신상정보가 활용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배후설'을 거론하고 있다. 여야의 폭로전을 보고 있노라면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을 써도 괜찮다는 잘못된 인식을 발견할 수 있다. 갈 데까지 가보자는 '막장 정신'이 대선 판을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 새누리, 정수장학회-朴후보 측 휴대폰 통화내역 사진 민주당 의원 공개엔
"몰래 촬영한 것" 비난
새누리당은 17일 한겨레신문이 보도한 정수장학회와 MBC 간의 정수장학회 지분 매각 추진 대화 내용 공개와 관련, '도청' 의혹을 제기했다. 때마침 민주통합당 배재정 의원이 정수장학회 이창원 사무처장의 휴대폰 통화 내역 사진을 공개하자 '도촬'의혹도 거론했다.
새누리당 안대희 정치쇄신특위위원장은 이날 SBS라디오에 출연해 "도청 의혹에 대한 사실 관계가 어떤지 빨리 조사할 필요가 있다"며 "만약 도청이 사실이라면 굉장히 중대한 범죄"라고 말했다. 안 위원장은 "도청은 국민들이 아주 싫어하고, 법치국가 원리를 훼손하는 중대한 범죄"라며 "그 내용도 도청을 꼭 해서 할 만한 공익적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고 주장했다. 새누리당 법사위 간사인 권성동 의원도 이날 "도청 의혹은 민간인 불법 사찰에 버금가는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수장학회와 MBC 간 대화록은 정황상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정치권 안팎의 주장이다. MBC측도"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과 이진숙 MBC 본부장 등 세 명만이 참여한 대화의 내용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유출됐다"며 "이는 불법 감청이 아니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대화를 도청하거나 적어도 도청한 내용을 그대로 기록한 문건을 확보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말했다. 물론 대화에 참여한 사람이 녹음한 내용이 유출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MBC는 정수장학회 측과의 대화를 보도한 한겨레신문사 소속 기자를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도촬 의혹도 제기됐다. 민주당 배 의원은 이날 "정수장학회 측이 MBC 지분 매각 논란이 불거진 직후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측근들과 접촉했다"며 정수장학회 이 처장의 스마트폰 통화 내역을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배 의원은 지난 15일 정수장학회 항의 방문 때 이 처장이 자리에 두고 간 스마트폰을 허락 없이 열어 통화 내역을 촬영했다"고 주장했다.
새누리당 이정현 공보단장은 "남의 통화 내역을 열어보고, 사진을 찍어 공개하는 것은 저질 정치의 전형"이라며 "그런 사람들이 인권을 주장하는 것은 가소로운 위선"이라고 공격했다. 이 단장은 "당사자들이 전기통신보호법,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발을 검토하고 있다"며 "목적을 위해 사악한 수단을 동원하는 민주당의 막장 정치에 대해 문재인 후보는 입장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 민주,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정문헌 의원 검찰 고발
불법 열람했거나 국정원과 커넥션 가능성
민주통합당은 17일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노무현-김정일 비공개 대화록'의 존재를 주장한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을 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문재인 후보 측 문병호 법률지원단장은 이날 "정상회담의 비밀 대화록이 있다는 주장은 면책특권을 빙자한 허위사실 공표"라며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을 정쟁에 활용하는 것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고 말했다.
문 단장은 "국가정보원장은 비밀 대화록 존재 여부와 함께 노 전 대통령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주장하지 않겠다'고 한 발언이 있었는지 확인해 달라"고 요구한 뒤 정 의원에 대해서는 "발언의 출처를 공개하라"고 압박했다.
문 후보 측은 정 의원을 고발하면서 사자(死者)에 대한 명예훼손이나 공무상 기밀 누설,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혐의는 배제했다. 문 단장은 "유족까지 관련쳔?수 없는데다 정 의원이 없는 자료를 있는 것처럼 왜곡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문 후보 측은 또 청와대 통일비서관을 지낸 정 의원이 국가기밀을 불법으로 열람했거나 국가정보원이나 청와대 등과 일정한 커넥션이 있었을 개연성에 주목하고 있다. 두 차례 이뤄진 정상간 대화 내용이 담긴 대화록이 국가기록물로 보관돼 있을 경우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15년 동안 열람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문 후보 측은 특히 국정원 등 국가기관과 여당의 협력 가능성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갖고 있다. 진성준 캠프 대변인은 "배석자 없는 단독회담 자체가 없었는데도 정 의원이 이를 주장하며 녹취록을 언급한 것은 결국 애초부터 문서가 조작됐을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박영선 공동 선대위원장도 "정 의원이 '(비밀)회담 녹취록을 (북한) 통전부가 우리 측 비선 라인과 공유했다'고 말한 데 주목한다"고 강조했다. 대북 접촉 창구가 개입해 문서를 조작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민주당은 이번 논란을 새누리당의 흑색선전ㆍ정치 공작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색깔론을 들고 나왔다는 것이다. 박용진 대변인은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의 완전 공개가 어렵다는 점을 악용해 있지도 않은 허위사실을 날조해 주장함으로써 보수 진영을 결집시키려는 얄팍한 수를 쓰고 있다"고 여당 측을 맹비난했다.
이동훈기자 dhlee@hk.co.kr
양정대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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