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지인과 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 나눈 이야기가 있다. 대선이 가까워지니 수학의 정석에서 외우던 공식처럼 익숙한 기사들이 쏟아져 나온다는 내용의 대화였다. 예로든 기사들은 '여러 가지 경각심'을 국민에게 뜬금없이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이 시기가 되면 여론은 은근히 좌우, 동서, 남북을 나눈다. 애초에 각자의 입장에 대한 균열이 있었다고 인정한다 해도 지금 이 시기에 행해지는 일련의 주장들은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짝이 긋던 책상의 굵은 줄보다 더 선명하고 확실하다. 바꿔 말하면 큰 선거는 많은 사건을 잠재하고 있고 은밀하게 예고하고 있다. 수학의 정석처럼 선거의 정석으로 바꿔 이젠 공식으로 만들어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요즘 잠재해있던 일련의 일들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사라진 북 리설주, 알고 보니 거동도 어려울 지경', '북 김정일 장남, 북한 실세 만나서는 돌연', '국경지대 20대 북병사, 죽이든 밥이든 달라', '북 김정은의 23세 부인 리설주 한 달 넘게 실종, 왜 안 나타나나 했더니 결국…'.
15일 자 모 포털의 톱뉴스 섹션의 머리기사들이다. 몇몇 언론사들이 주로 무슨 기사에 몰두하고 있는지 머리기사들만 봐도 알 수 있다. 선거철마다 큰바람이 분다. 흔히 이 바람을 북풍이라 한다. 선거를 앞두고 우리 내부에서 시작된 이 바람은 안전이라는 인질을 볼모로 우리에게 경각심을 뿌리며 한동안 머문다. 선거가 지나가면 거짓말처럼 천천히 잦아드는 신기한 바람이다. 예상대로 천천히 북풍의 기류가 만들어지고 있다. 북풍 전야를 지나 조금씩 전국이 영향권으로 접어드는 중이다. 사건은 우연이라는 범주 안에서 한둘씩 터지고 있다. 하지만 우연은 필연이다. 사건은 반드시 징조를 가지고 있다. 나는 이를 북풍의 징조라고 이름 붙이고 싶다. 북풍의 징조는 여러 곳에서 감지된다. 정부는 지난달부터 대통령이 주재한 외교보안장관회의에서 북한의 서해북방한계선 침범과 관련한 발언들을 하기 시작했다.
애석하게도 북풍은 실제 선거와 밀접한 관련성을 가진다. 남북관계는 국민의 안정심리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고, 이 데이터는 국가 차원의 여론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충분히 가지고 있을 것이다. 북풍은 특정정당에 유리하게 작용했으나 2000년 이후에 북풍의 영향력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정치권에서는 북한을 무시하지 못할 선거의 변수로 보고 있다. 이것만 봐도 알 수 있듯 그들은 통계적인 시스템으로 우리의 아킬레스건을 정확히 알고 있다. 권력 앞에서 우리의 많은 것들이 코드화되어 있다. 북풍이라는 커다란 코드는 우리의 삶의 한 부분에 질서를 만들고 행동하게 한다. 모호한 잠재성, 그게 가장 유권자들의 선택을 방해한다.
그들의 이론으로 보면 잠재는 현실성은 아니지만, 실재성이 아닌 것은 또 아니다. 잠재라는 사건은 먼저 경보를 동반한다. 하지만 결국 경보로 끝난다. 그래서 분명히 벌어진다고 말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벌어지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없다. 이 애매한 모호성을 가진 경보, 이것이 바로 큰 바람이다. 이 잠재를 경보로써 실재하게 만들려면 이미지가 필요하다. 양을 몰듯 국민을 한 방향으로 몰아넣을 어떤 아이콘이 필요한 것이다. 그들은 늘 그렇듯 이번에도 그 아이콘으로 북한을 선택했다. 국민의 대북심리는 벌어질 것 같은 일에 대한 두려움으로 몇 가지 발언으로 충분히 자극할 수 있다. 일종의 사이렌을 울리는 것인데, 사이렌을 울릴 때마다 우리에게 국가와 개인적인 안위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라고 요구한다. 우리가 실체를 가지지 않고서도 거대하게 몸집을 불릴 수 있는 이 북풍 때문에 얼마나 많은 두려움에 떨었는지 생각해보면 치가 떨린다. 우리가 체감할 수 있는 실체가 있는 경각심은 주변에도 많다. 당장 하루가 달라지는 물가와 그로 인해 느껴지는 빈부의 격차에서 오는 상실감, 이런 것들은 올바른 정책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지점이다.
천정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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