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오후 4시쯤이 좋겠다. 와랑와랑한 제주의 가을볕이 수면에서 타닥타닥 튀어 오르는 시간. 신도포구에서부터 수월봉 지나 용수포구에 이르는 제주의 서쪽 모퉁이는 여유로운 오후의 산책에 어울리는 길이다. 성산 앞바다에서 솟아오른 해는 차귀도 너머로 다시 바다에 잠기는데, 물질을 앞둔 해가 뿌리는 따순 햇살이 검질긴 바닷바람과 섞여 아늑하게 살갗에 와 닿는다. 마음에 울혈 같은 매듭 있다면 이 길을 걸어 보기를. 게으르고 허랑한 발걸음으로, 해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제주의 시월 햇살이 얽힌 올을 풀어줄 것이다.
"저기 가 봐. 함바집 밥이 먹을 만해."
지도에서 제주의 서쪽 모서리는 제주시 한경면과 서귀포시 대정읍으로 구분돼 있다. 제주 사람들은 그런 지명보다 그냥 '뱅귀'라고 부른다. 넓은 평야라는 뜻의 제주 사투리다. 제주도의 서쪽은 일조량과 굴곡 없는 땅이 비교적 넉넉해 예로부터 농사를 지었다. 제주올레(11, 12코스)가 해변길을 따라 생겨나기 전, 1132번 도로 위로 달리는 관광 차량들은 이곳을 비켜 다녔다. 덕분에 아직 농사 짓는 시골 냄새가 오롯하다. 조생양파, 콜라비, 브로콜리, 무, 양배추 심는 밭이 넓다. 점심 먹으러 동네 어른에게 식당을 물었더니 함바집을 일러줬다. 보말국(고둥을 갈아서 끓인 국)에 자리돔, 돼지갈비 몇 토막이 육천 원. 들밥을 배달하는 집답게 양념이 진했다.
딱히 목적지도 정하지 않고 떠난 산책길, 수월봉부터 걸었다.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 제주의 서쪽 땅끝이다. 해발 77m. 봉우리라기엔 조금 머쓱한 숫자이지만 해안선에 붙어있어 무척 우뚝하다. 산방산, 차귀도, 죽도, 눈섬, 당산봉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멀리 한라산 능선을 배경으로 밭두렁 따라 패치워크 작품처럼 색색으로 구획된 밭이 펼쳐진다. 농경지 한 귀퉁이에 출입을 제한하고 있는 곳도 있다. 신석기 유물이 발굴된 선사유적지다. 그리고 바람에 누웠다 일어서며 아우성치는 억새. 이 곳에 오면 모자끈 단단히 조여야 한다. 바람섬 제주에서도 제일 표독한 바람이 이 곳에 산다. 그래서인지 이 봉우리에 서린 전설도 무척 스산했다.
수월과 녹고는 남매였단다. 먼 옛날 둘은 홀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깊은 병에 걸렸다. 이들을 불쌍히 여긴 스님이 병을 고칠 수 있는 100가지 약을 일러주고 갔다. 남매는 99가지 약초를 구하고 마지막으로 오갈피를 구하러 산비탈을 올랐다. 그런데 수월이 그만 발을 헛디뎠다. 떨어져 죽은 누이를 안타까워하며 녹고는 17일 동안 그치지 않고 울었다는데, 그 눈물은 지금도 수월봉 아래 엉알에서 흘러 내리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수월봉은 녹고물오름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수월봉을 내려오면 길은 해변 따라 엉알길로 이어진다. 엉알은 바닷가나 절벽 등의 바위그늘을 뜻하는 제주 사투리 '엉'과 애래쪽을 뜻하는 사투리 '알'이 합쳐진 말이다. 여러 형태의 화산 분출물이 수만 년 시간의 두께로 쌓이고 굳혀진 것이다. 휘어지고 깎여나간 절벽마다 들어야 할 설명이 가득했다. 고층 빌딩 크기의 자연 교과서인 셈. 엉알길 곳곳엔 샘물이 있다. 한라산에서부터 흘러온 지층수가 해변에 이르러 용천수로 분출한 것이다. 지질학적인 해석은 그렇단다. 하지만 녹고가 흘린 눈물이 고인 샘이라는 설명에 더 끌렸다. 제주의 서쪽 끄트머리에서 그러한 끌림은 강한 것이어서, 여행길 내내 기억 저편의 이야기가 지닌 인력에 끌려갔다.
엉알 구간 끝나면 길은 자구내포구 돌아 생이기정으로 이어진다. '생이'는 새, '기정'은 벼랑을 뜻하는 제주 사투리다. 생이기정은 당산봉 아래 새가 살고 있는 절벽을 부르는 말. 2, 3년 전만 해도 산책로가 따로 없어 낚시하는 동네 사람들이나 오르내리던 절벽이었다. 가마우지, 재갈매기 등 철새들의 배설물로 화산석 중간중간이 희끗희끗했다. 보랏빛 산박하가 밟히는 언덕을 올라 생이기정 윗길로 들어서면, 새들의 날갯짓 위로 걷는 색다른 여유를 누릴 수 있다. 아_. 저절로 짧은 감탄이 나오는 풍광. 반짝이는 윤슬을 테두리로 두른 차귀도가 발 아래 잠겨 있었다. 동행한 고산1리 이장 고광훈(51)씨의 이야기를 듣자니, 저 섬에선 사라진 낙원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1970년대 간첩 사건으로 소개령이 내려지기 전엔 여덟 가구 살았어요. 그땐 저 섬 사람들 모두 거의 벌거벗고 살았어요. 가진 것도 없지만, 부족한 것도 없는 사람들이었지요."
그 이야기에 끌려 자구내포구에서 배를 탔다. 차귀도까지는 배로 겨우 10분. 하지만 지난해 10월 탐방객들에게 개방될 때까지 30년 넘게 출입이 금지됐던 섬이다.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돼 하루 100명씩만 섬을 밟아볼 수 있다. 가려면 선착장(064-738-5355)으로 미리 연락을 해야 한다. 짧은 뱃길이지만 와도와 지실이섬(매바위)의 모습이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이 장관이다. 카메라 셔터를 몇 번 누르기도 전에 도착. 아, 아…아!. 그리고 올라선 섬에서, 일행은 다시 감탄을 뱉을 수밖에 없었다. 느긋하게 출렁이다 급하게 깎이고, 다시 우뚝 솟아 오른 화산섬. 이 섬에 대해선 길게 말을 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 두 팔을 벌려서 연이 된 듯 바람을 맞는 일행 속에서, 나는 그저 사선으로 낙하하는 빛을 향해 해바라기처럼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꾸덕꾸덕, 남녘의 가을 햇살에 젖은 마음이 마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제주의 서쪽 모퉁이를 간질이는 바람이 부드럽게 다가왔다.
제주=글ㆍ사진 유상호기자 sh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