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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 위한 모바일 이력서·점심 도시락통 테이크아웃… 대학서 다양한 공공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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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 위한 모바일 이력서·점심 도시락통 테이크아웃… 대학서 다양한 공공 프로젝트

입력
2012.10.17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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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 강국 英, 디자인 강국 된 비결

다문화·다인종 용광로 문화 속 국가가 전략적 디자인산업 육성

英 유수 대학에 서비스디자인학과

이론과 실무 병행 수업… NGO 등 연계 프로젝트 다수…사회적 가치·책임 실현에 초점… 널리 공유 위해 저작권 요구안해

남아공 고아 구직 모바일 서비스

저가 휴대폰으로 이용 가능한 구직자·고용자 간 네트워크 서비스… 휴대폰으로 이력·추천서 작성 전송

환경오염 막는 '푸드 온 더 고'

점심식사 포장 쓰레기 줄이려 슈퍼에 도시락통 갖고와 음식 담기… 정기 이용자엔 추가 서비스도

산업혁명이 태동한 영국은 이제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를 배출하는 디자인 강국이다. 애플의 수석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 세계적인 건축 거장 노먼 포스터, 날개 없는 선풍기로 혁신을 일으킨 제임스 다이슨까지, 모두 잘 알려진 영국 출신 디자이너다. 제조업 강국에서 디자인을 비롯한 창조 산업의 메카로 탄생할 수 있던 비결이 무엇일까?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뒤섞여 새로운 것을 주조해내는 용광로, 법과 제도 개선을 통한 국가의 전략적인 디자인 산업 육성, 산업혁명의 자본과 기술이 잉태한 수많은 예술·디자인 전문대학 등이 이유로 꼽힌다. 제조업이 지고 서비스산업이 성장하면서 디자인의 영역은 점차 확장되고 있다. 이런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대처하는 곳은 기업이지만 시대에 맞는 적합한 인재를 길러 내는 일은 대학이다. 영국의 내로라하는 예술·디자인 전문대학에서도 서비스 산업 성장에 맞춰 서비스디자이너를 길러내기 위해 강의를 신설하거나 학과를 개설하고 있다. 올해 9월에는 영국 왕립예술대학(Royal College of Art)도 서비스디자인학과를 신설해 인재 육성에 돌입했다.

교육기관의 통폐합 과정을 거치면서 100년의 명맥을 이어온 예술ㆍ디자인 전문대학 런던 컬리지 오브 커뮤니케이션(London College of Communication·이하 LCC)은 4년 전 국가 지원을 받아 서비스디자인학과를 개설했다. 2005년 당시 디자인 카운슬을 이끈 조지 콕스 경이 디자인 혁신을 촉구하며 세계 디자인 현황과 방향에 대해 쓴 영국 디자인 정책 보고서 '콕스 리뷰'(Cox Review)는 영국 디자인 정책을 대대적으로 수정하는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 그 중 하나가 LCC의 서비스디자인학과 개설이다.

학과와 산업을 연계하여 학생들을 대상으로 아카데믹한 이론과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실무 경험이 동시에 이뤄지는 LCC의 수업 방식은 서비스디자인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특징이 있다면 경제적 가치에 우선 순위를 두기보다 'social value', 즉 사회적 가치와 책임감 실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고령화 시대의 노인들, 소외된 청소년, 헬스케어 서비스 등 공공적인 프로젝트가 다수를 차지한다.

1년, 3학기 석사 과정에서 서비스디자인을 배우는 학생들은 대부분 3학기째에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필리파 예이츠(Phillipa Yeats)는 지난해 남아프리카공화국 고아원 출신 청소년의 취업을 도와주는 모바일 서비스 'mQashi'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남아공 고아원에서 자란 아이들은 16~17세가 되면 퇴소 후 독립해 취업전선에 뛰어들어야 하지만 정작 아이들은 이력서를 쓸 종이나 프린터조차 없고 자신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방법도 알지 못했다.

'mQashi'는 저가 휴대폰에서 이용 가능한 구직자, 고용자, 기업 간의 네트워크 서비스다. 여전히 피처폰(2G)을 많이 사용하는 남아공에서 청소년들이 이력서를 휴대폰으로 작성하게 하고, 전 직장 상사나 지인이 이력서에 대해 '별표'같은 추천과 전송 등을 할 수 있게 했다. 이는 남아공 취업시장이 공개채용보다는 입소문과 소개에 크게 의존한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현재 본격적인 출범에 앞서 수정·보완 작업 중이다.

LCC 서비스디자인학과 앨리슨 프렌디빌(Alison Prendiville) 교수는 "모든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기존의 인류학적인 방법을 디자인 분야에 적용한 디자인 에스노 그라피가 중요하다"면서 "지역마다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서비스가 적용될 지역이나 대상들의 행동 양식 관찰이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문화권뿐 아니라 당연하다고 여겨지던 상황에 대한 의문의 제기와 그에 따른 관찰은 기실 서비스디자인의 기본이다. 점심 식사 후 런던 중심부에 버려지는 식품 포장 폐기물의 엄청난 양을 목격한 말위나 스테판(Malwina Stepien)은 '푸드 온 더 고'(Food on the Go)라는 서비스를 기획했다. 이들 폐기물은 재활용조차 어렵다는 사실을 청소부 인터뷰를 통해 확인한 스테판은 점심식사 방식을 새롭게 디자인하는 편을 택했다.

로컬 푸드 전문 슈퍼마켓과 연계한 프로젝트로, 이곳에서 정기 이용권을 구매한 인근 회사원이 자신의 빈 도시락통을 가져다 주면 거기에 점심을 담아주는 방식이다. 환경 오염을 줄이?동시에 슈퍼마켓은 한 달 판매량을 예측할 수 있어 음식 낭비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정기 이용권을 구매한 회사원에게는 과일을 추가 제공하거나 점심식사하기 좋은 장소가 표시된 지도 냅킨을 제공하면서 지속적인 이용을 장려한다.

학생들의 몇몇 프로젝트 중에는 이미 실제 적용 중인 사례도 적지 않다. 베로니카 라이(Veronica Lai)의 '메소드 서비스 팩'(Methods service pack)도 그 중 하나. 경제위기로 예산을 삭감당한 런던시 자치구 바킹-다겐햄(Barking and Dagenham)의 디자인 관련 부서별 통폐합을 3개월간 관찰한 라이가 발견한 가장 큰 변화는 인력구성이었다. 오래 근무한 직원의 교체는 그들이 쌓아온 노하우, 곧 축적된 지식도 함께 소멸하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업무가 원점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라이가 개발한 '메소드 서비스 팩'은 일종의 인트라넷이다. 게시판 위주로 평면적 정보 전달이 아니라, 그동안 진행해온 프로젝트와 접근 방식 등을 시각적으로 정리해 누가 보더라도 쉽게 이해될 수 있게 한 것이 특징이다. '메소드 서비스 팩'은 올해 상반기부터 바킹-다겐햄에서 시행 중이다.

2,3년 전부터 서비스디자인이란 용어가 유행처럼 번졌지만 서비스디자인의 필요성은 이미 1980년대 초반부터 금융권에서부터 차츰 일어나기 시작했다. 학계에서는 쾰른국제디자인학교(KISD)에서 서비스디자인이 디자인의 한 분야로 도입되면서다. 영국의 드몽포르트 대학에서 서비스디자인을 가르치는 디자인 경영학과의 백은경 교수는 "서비스디자인은 최근 갑자기 생겨난 개념이 환경과 문화, 시대에 따라 경험 디자인, 디자인 경영 등의 다른 이름으로 불려왔다고 볼 수 있다"면서 "디자인 경영학과가 있는 다수의 대학에서는 이미 서비스디자인 수업을 진행하며 민간기업뿐 아니라 국방, 의료 등 다양한 공공부문에의 적용을 돕는다"고 설명했다.

존 갈리아노, 알렉산더 멕퀸 등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를 배출한 센트럴 세인트 마틴 예술대학은 미술·디자인 석사과정에 '혁신 경영' 등 이미 5~10년 전부터 서비스디자인 개념이 담긴 두 개 학과를 운영 중이다. 여기에서도 이론뿐 아니라 실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영국 정부나 NGO 산하기관, 사회적 기업 등의 프로젝트가 다수를 차지한다.

그 중 하나가 런던 이민자들을 위한 '워킹 프로젝트'(Walking Project). 다인종이 모여 사는 런던의 특성을 반영하는 동시에 그들이 런던이란 도시를 제대로 체험할 수 있게 도와주기 위한 지도가 제작됐다. 이민자들은 대부분 대중교통을 이용해 직장을 가거나 친구를 만난다. 그러나 대중교통으로 갈 수 있는 곳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런던의 골목골목을 온전히 체험하려면 걷기만큼 좋은 방법은 없다. 센트럴 세인트 마틴 디자인대학 학장 조너선 바렛(Jonathan Barratt)은 "걷기의 과정이 없으면 런던에서의 경험은 적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단순히 걷기 좋은 거리를 추천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 전체를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도 걸어 다니는 방법을 알려주며, 이를 알리기 위해 노숙인들이 판매하는 잡지 '빅이슈'에 지도를 싣기도 했다"고 말했다.

서비스디자인이 다른 디자인과의 차이점 중 하나는 사회적 기업이나 정부 산하 기관 등 공공부문에서 진행한 프로젝트의 경우 대체로 까다로운 저작권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바렛 학장은 "서비스디자인은 다수의 사람들이 공유하고 실제로 널리 이용돼야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공동기획 : 한국일보·한국디자인진흥원

런던=이인선기자 kel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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