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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02년 후보 단일화 성사땐 모두 대선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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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02년 후보 단일화 성사땐 모두 대선 승리

입력
2012.10.16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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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선마다 후보 단일화는 여야 정치권의 가장 중요한 이슈로 제기되곤 했다. 1992년 14대 대선 때를 제외하면 1987년 이후 매번 후보 단일화 이야기가 선거판을 뜨겁게 달궜다.

87년 직선제가 도입되자마자 야권을 중심으로 김영삼ㆍ김대중 후보에 대한 후보단일화 이야기가 처음 등장했다. 민정당 노태우 후보를 누르고 정권교체를 하기 위해서는 양김씨의 단일화가 필수적이란 이유였다. 하지만 단일화는 실패했고 노 후보가 36.6%의 역대 최저 득표율로 청와대에 입성했다.

97년 15대 대선은 사실상 후보 단일화가 처음 이뤄진 때다. 내각제 실시를 약속 받은 김종필 후보가 출마 의사를 접고 김대중 후보의 손을 들어줬고, 김대중 후보는 이 같은 'DJP연대'를 앞세워 당선됐다. 당시 여권은 이인제 후보의 독자 출마로 분열하면서 이회창 후보의 표를 상당 부분 잠식해 패퇴했다.

2002년 16대 대선은 노무현 후보가 정몽준 후보와의 경선에서 승리한 뒤 여세를 몰아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꺾으며 후보 단일화의 위력을 실감케 했다.

노 후보는 11월까지 여론조사에서 이회창 후보와 정 후보에 밀리고 있었으나 정 후보와의 단일화라는 승부수를 던졌고, 대선 후보 등록을 이틀 앞둔 11월25일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화에 극적으로 성공했다.

2007년 대선에선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가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 이인제 민주당 후보와의 범여권 후보 단일화를 노렸다. 하지만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독주 속에 단일화 논의는 제대로 진전되지 않았다. 결국 12월초 세 사람이 각자 출마하는 것으로 정리됐고, 이회창 후보도 무소속으로 나선 상황이었지만 이명박 후보가 2위 후보를 사상 가장 큰 표 차이로 따돌리는 기록을 세우며 여유 있게 승리했다.

13대 대선 이후 후보 단일화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던 때는 김영삼 민자당 후보가 당선된 92년 14대 대선이 유일하다. 하지만 이 때는 김대중 후보가 선거 이전에 이기택 전 의원이 총재로 있던 '꼬마민주당'과의 합당을 통해 야권을 통합시킨 상태라 별도의 후보 단일화가 필요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후보 단일화가 성사될 경우 모두 단일 후보 타이틀을 쥔 쪽이 승리한 셈이다.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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