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한 고급 빌라촌. 불법 사설 카지노에서 일하다 경찰 단속에 걸려 조사를 받고 있는 A씨가 한 건물을 가리켰다. A씨는 "지금도 저곳에서는 24시간 카지노가 돌아간다"며 "한 번에 1억원까지 배팅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서울 시내에서 은밀히 운영되고 있는 불법 사설 카지노는 A씨가 아는 곳만 6~7군데. 서울 강남역 부근 오피스텔이나, 도곡동, 청담동 고급 빌라에 둥지를 틀고 있다고 한다. 이용객은 기업체 사장부터 의사, 자영업자 등 다양하고 카지노 모집책(롤링업자)의 소개로 발을 들인다는 게 A씨의 설명이다. A씨는 "바카라를 주로 하는데, 한 카지노 테이블에 최대 13명이 앉을 수 있다"며 "일당 25만~30만원을 받는 공식 딜러 3명이 번갈아 딜링을 하기 때문에 강원랜드와 비교해도 서비스가 빠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3, 4년 전부터 퍼지기 시작했지만 열흘에서 보름 간격으로 옮겨 다니기 때문에 경찰 단속도 쉽지 않다.
서울 도심 한 가운데서 불법 사설 카지노가 버젓이 운영될 뿐만 온라인에서도 도박 게임이 넘쳐나고 있다. 이처럼 도박에 쉽게 노출되고 접근할 수 있는 탓에 평범한 직장인 주부 학생들까지 도박 중독에 빠져들고 있는 게 '도박 천국'의 실상이다.
16일 국내 유명 포털사이트에 '베팅 사이트'라는 단어를 검색하자 100여 개가 넘는 사이트가 나왔다. 검색된 대부분의 사이트는 불법 사설 스포츠도박을 운영하는 곳. 원래 프로스포츠 베팅은 국민체육진흥공단 계약자인 스포츠토토에서만 가능하지만, 불법 스포츠도박 사이트에 걸리는 판돈이 훨씬 큰 실정이다.
회사원 장모(34)씨는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생중계를 보면서 투수가 초구에 볼을 넣는지 스트라이크를 넣는지 까지 배팅을 한다"며 "투수의 성향과 경기 흐름만 잘 분석하면 하루 저녁에 몇 백 만원을 벌 수도 있다"고 말했다. 대학 시절 야구 동호인 활동을 했다는 그는 "지난 준플레이오프 경기 때는 돈을 잃긴 했지만 운이 없었기 때문"이라며 "따는 경우가 많았다"고 자랑했다.
불법 스포츠도박에는 우리나라 경기뿐 아니라 전 세계 스포츠 중계가 모두 이용된다. 전세계 스포츠를 중계하는 한 인터넷 방송에선 익명의 해설자가 방송을 진행하며 불법 스포츠도박 사이트로 연결할 수 있도록 유인한다. 채팅창에 '괜찮은 놀이터 없느냐'고 치면, 순식간에 여러 통의 쪽지가 날아든다. 김모(32)씨는 "쪽지를 받고 휴대폰 인증과 은행 계좌번호 확인만 거치면 가입이 끝난다"며 "스타크래프트와 같은 온라인 게임스포츠도 도박에 이용된다"고 말했다.
최근 5년 간 경찰이 적발한 불법 온라인 도박은 모두 5만여건. 2009년에는 불법 도박사이트 특별단속 기간을 정해 수사한 결과 한 해 3만여 건의 불법 도박사이트를 적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단속에 아랑곳하지 않고 불법 도박사이트가 우후죽순처럼 생기는 실정이지만 경찰로서는 속수무책이다. 대부분의 불법 도박사이트가 대만, 중국, 일본 등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정석화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 실장은 "불법 도박 사이트는 해외경찰과의 공조가 없으면 검거에 한계가 있다"며 "아직까지는 해외에서 도박사이트 운영자들을 현지에서 검거한 사례는 없는 걸로 안다"고 말했다.
이동현기자 nani@hk.co.kr
김현빈기자 hb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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