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상도동계와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동교동계는 1970~80년대 민주화 세력의 양대 산맥이었다. 두 계파는 각각 자신들의 주군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키면서 최고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달이 차면 기울 듯 자신들이 창출한 정권에서 분화와 몰락이 시작됐다. 상도동계는 1997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 지지와 제3후보 이인제 지지로 갈리면서 몰락의 길을 걸었고, 동교동계는 DJ 임기 중반에 소장파 반기로 내리막길에 들어섰다.
■ 권노갑 한화갑 등 DJ 직계 7인은 97년 대선 직전 임명직에 나서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DJ 대통령 취임 후 동교동계는 직위와 상관없이 권력의 핵심으로 부상하면서 줄곧 비난과 공격의 초점이 됐다. 그 정점에 있던 권노갑은 2000년 12월 자신이 키운 정동영 최고위원에게 정풍의 일격을 받아 최고위원직을 내놓고 2선으로 물러났다. 민주당 쇄신 과정에서 비리와 얽힌 상당수 동교동계 인사들이 정치무대에서 내려가야 했다.
■ 옛 동교동계 인사들을 더욱 구차하게 만든 것은 노무현 정부 첫해인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이었다. 신당창당세력은 새 정치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386등 신진세력의 정치권 진입을 위해 동교동계를 비롯한 구 정치세력을 배제하기 위한 정치투쟁 성격이 짙었다. 열린우리당은 2004년 4월 총선에서 탄핵역풍에 힘입어 국회 과반의석 제1당을 차지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동교동계 중진들이 원내 진입에 실패하고 정치낭인으로 떠돌게 됐다.
■ 그렇게 퇴장했던 동교동계 인사 상당수가 새누리당 박근혜 캠프로 모여들고 있다. 권노갑 한화갑 등과 함께 동교동계 핵심 3두마차였고, DJ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냈던 한광옥씨가 앞장을 섰다. 엊그제는 안동선ㆍ이윤수 전 의원 등이 옛 상도동계 인사들과 함께 박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새누리당에 입당했다. 국민통합, 화해와 용서를 명분으로 내걸었지만 별 감흥은 주지 못했다. 명분 뒤에 권력의 끄트머리라도 붙잡아보려는 집착이 엿보여서다. 역할을 다한 그들이 이 가을 단풍처럼 곱게 물들어갈 수는 없을까.
이계성 수석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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