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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음악을 하고 싶었을 뿐… 그것도 치열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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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음악을 하고 싶었을 뿐… 그것도 치열하게"

입력
2012.10.16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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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고 출신 서울대 교수독학해 청주대 음악교육과 진학 佛 도밍고 콩쿠르 우승후 해외로 "큰 무대 아닌 성가대여도 만족"올해는 아리아로 고국 무대바그너·베르디의 곡 등 불러 "베이스 특성 살려 꾸준히 무대에 후배들에 하나의 길 보여줄 것"

남성의 가장 낮은 성부인 베이스는 테너나 소프라노처럼 관객을 매혹하는 화려한 기교를 자랑하는 음역대는 아니다. 오페라에서 맡는 배역도 늙은 왕, 주인공의 아버지, 음모자 등 눈에 잘 띄지 않는 역할로 한정적이다. 하지만 베이스 연광철(47)씨는 세계 무대에서 한국 클래식 음악의 존재감을 알리고 있는 대표적인 성악가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바그너의 오페라를 상연하는 독일 바이로이트 축제 등 세계 주요 오페라 무대에 꾸준히 서고 있는 그의 이름 앞에는 '세계 오페라 무대의 떠오르는 보석' '바그너가 찾던 목소리' 등 외신의 찬사 한두 개쯤은 늘 따라붙는다. 2010년부터는 서울대 음대 교수로 재직 중이기도 하다.

그는 충청도 시골에서 농사를 도우며 공고를 다니다 고교 3학년 때 성악으로 진로를 정했다. 음악 관계자나 애호가가 아니어도 성공 비결이 궁금할 만한 극적인 인생 여정이지만 그의 말투는 인터뷰 내내 담담했다.

26일 고양아람누리극장에서 독창회를 여는 그를 16일 서울 한남동의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그는 "아름다운 음악을 하고 싶었을 뿐 유명해지겠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저는 작은 합창단이나 교회 성가대의 일원이었어도 음악과 함께 하는 삶에 만족했을 겁니다. 무대의 크기와 출연료 액수가 만족의 기준이 된다면 그건 예술이라 말할 수 없어요."

그는 어려서부터 노래에 재능을 보였지만 정식으로 성악 공부를 시작한 것은 고3 때 건축설계기능사 자격증 시험에 떨어지면서부터다. 밥벌이가 될 대안을 궁리하다 음악을 떠올렸고 독학으로 청주대 음악교육과에 진학했다. 1993년 파리에서 열린 플라시도 도밍고 콩쿠르에서 우승한 후 뉴욕, 빈, 드레스덴, 뮌헨 등지에서 활발히 활동해 왔다.

"서울의 명문대를 졸업한 이들에 대한 부러움과 동경은 전혀 없었다"는 그는 오페라의 본고장에서도 마음의 동요를 느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춘향전'의 이몽룡을 피부가 까무잡잡한 외국인이 맡는 걸 상상해 보세요. 당연히 서양인이 보기에 키도, 눈도, 코도 작은 동양인이 출연하는 오페라는 반감이 느껴지겠죠. 하지만 제가 노래를 다른 성악가보다 3~5배 정도 잘한다면 할말이 없지 않겠어요?"

유럽 데뷔 초기 키높이 구두를 신어 보기도 했지만 결국 그가 승부를 건 것은 현지 문화를 철저히 익히는 일이었다. 캐스팅 제의를 받으면 악보는 물론 이야기의 배경과 인물 분석 등을 출연 3년 전부터 시작했다. 키높이 구두 착용은 "171㎝ 키에서 7㎝ 높이 구두를 신어봤자 190㎝가 넘는 다른 가수들 사이에서 표시도 나지 않아" 1년 만에 그만뒀다.

지난해 한국 가곡을 들고 고국 무대에 섰던 그는 이번에는 오페라 아리아로 무대를 꾸민다.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중 '내가 진정으로 그랬단 말인가', '파르지팔' 중 '티투렐, 신앙심 깊은 영웅' 과 베르디의 '돈 카를로' 중 '그녀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차이콥스키의 '예프게니 오네긴' 중 '사랑의 위대한 힘 앞에' 등을 노래한다. "바그너의 음악은 전막이 아닌 형태로 선보이면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지만 정말 무대예술을 생각한다면 대중에게 친숙하지 않은 음악도 자꾸 소개해야죠."

그는 "먹고 살기 위해 음악을 하는 것일 뿐 특별히 목표하는 바는 없다"면서도 "대중가수처럼 반짝 유명해졌다 사라지는 성악가도 많기 때문에 크고 작은 다양한 역할로 오래 무대에 설 수 있는 베이스의 장점을 살려 음악계 후배들이 가야 할 하나의 길을 보여 주고 싶다"는 꿈을 밝혔다.

1시간 동안 "촌놈으로 욕심 없이 자라 크게 느끼는 어려움 없다"고 강조하던 연씨는 인터뷰 말미에야 속내를 털어놓았다. "두 딸이 어릴 때 본 저에 대한 기억이 지하실에서 노래 연습하는 것 아니면 공연 마치고 와서 자던 모습밖에 없대요. 참 치열하게 살았어요, 저."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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