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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10월 17일] '착한 폴리페서'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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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10월 17일] '착한 폴리페서'를 기다리며

입력
2012.10.16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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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인 2007년 11월 중순쯤이었을 게다.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의 당선이 식은 죽 먹기로 여겨지던 시점에 대학 교수 100여명이 한꺼번에 언론에 등장했다. 이 후보 지지 선언을 한 것이다. 경제를 살리고 국가발전을 업그레이드 할 인물이 이 후보 밖에 없어 그를 돕기로 했다는 내용이다. 대학도, 전공도 다른 교수들이 집단으로 특정 대선 후보를 밀겠다는 '찬양가'는 그전까진 본 적이 없었고, 더구나 이런 희한한 풍경을 주도한 사람이 현직 총장임을 확인했을 때 나는 요즘말로 '멘붕'이었다.

지지 선언의 열매는 아주 달콤했다. 정년 퇴임을 앞둔 총장은 MB가 취임한 직후에 해외 공관장으로 나갔다. 외교의 'ㅇ'자도 모르는 문학 전공 교수가 외교관이 됐으니 이런 코미디가 어디 있는가. 교수 경력은 다소 처지지만 MB 지지 대열 선두에 있던 다른 폴리페서 몇몇도 한 자리씩 가져갔으나, 대부분 '실패한 외도'로 막을 내렸다. 전공과 별 관련이 없고 조직을 운영해 본 경험이 없는 학자들이 엉뚱한 데 둥지를 틀었으니 결과는 뻔하지 않겠나. 구성원들과 갈등을 빚다 스스로 그만두거나 거의 낙제점 수준의 기관장 평가를 받고 물러난 경우가 수두룩하다.

다시 대선 시즌이다. 폴리페서에게는 그야말로 '대목'이다. 그런데 5년 전과 엇비슷하면서도 다른 모습들이 목도되고 있다.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이 '빅3' 대선 후보 옆엔 어김없이 지식인을 대표한다는 교수들이 포진해 있다. 대선 캠프에 간여하는 걸로 파악된 숫자만 500명이 넘고, 간접 참여까지 합치면 1,000명이 넘는다는 얘기도 들린다. 정치의 계절이면 몸이 근질거려 캠퍼스를 뛰쳐나갈 수 밖에 없는 폴리페서의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뻔한 결말로 싱겁게 승부가 난 지난 대선과 달리 박빙의 승부가 일찌감치 예고되고 있는 탓에 전문성 면에서 검증된 교수들이 '빅3'에 밀착해 있는 게 두드러진다. 이름이 꽤 알려진 교수들이 대선판을 후끈 달구는 것도 지난 선거 보다 강도가 훨씬 세 보인다. '떡고물' 욕심에 일단 발을 밀어넣고 보자는 교수들은 많이 줄어든 것 같다는 게 대선 캠프 진영에서 들리는 얘기다.

교수 같은 지식인의 정치 참여를 비난하는 것은 후진국적 발상이라는 판단이다. 어떤 고루한 이는 정권 참여를 거절했던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을 들먹이며 교수들의 현실 정치 개입을 비판하지만 이건 뭘 모르고 하는 소리다. 군사 정권의 요직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민주화 운동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던 사학의 총장 입장에선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강의와 연구를 내팽개쳤다고 흥분하는 이도 있지만, 이것도 작금의 대학 현실을 인지하지 못한데서 나온 무지다. 교수 개인에 대한 평가가 정착된 지는 한참됐다. 강의 빼먹고 연구 소홀히 했다가는 당장 '문제 교수'로 낙인 찍히고 승진에서도 불이익이 기다리고 있다.

폴리페서를 긍정적으로 보는 거 아니냐는 시각도 있겠지만 그건 아니다. 올해 대선 처럼 교수들의 전문성이 절실한 적은 없었다고 여겨진다. 대선 후보들은 우리한테도 바짝 다가와 있는 경제위기를 극복할 묘안이나 국가 발전을 견인할 정책 아이디어들을 교수들로부터 도출해내야 하는 의무가 있다. 뒤집으면 대선 캠프에 간여하는 교수들의 책임감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다른 직업 처럼 교수들의 성향 또한 천차만별이기 마련이다. 모르긴해도 대학에 사표를 던지면서까지 정치에 참여하고 싶은 교수들은 흔치 않을 것이다. 전문적 식견을 새로운 정치권력 창출에 반영하고 싶은 욕망은 폴리페서라면 누구나 갖는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여러 문제가 잉태된다. 교수냐, 정치인이냐의 정체성 논란도 여기서 비롯된다.

학자로서 살아가려면 '조커' 역할에 그쳐야 한다고 본다. 자신들의 정치 참여를 '공적 봉사'로 여기면 고민은 눈 녹듯이 사라진다. 선거가 끝난 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면 그걸로 그들의 임무는 종료된다. '착한 폴리페서'를 보고 싶다.

김진각 여론독자부장 kimj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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