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이 64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여야 정치권은 온통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 논란과 정수장학회 지분 매각 의혹을 둘러싼 정치 공방에 신경을 쓰고 있다. 마주 보고 차를 달리다가 먼저 피하면 지는 담력 싸움인 '치킨 게임'을 연상케 할 정도이다. 과거 문제를 둘러싼 두 개의 전선에서 진흙탕 싸움을 벌이다 보니 미래 문제를 둘러싼 정책 논쟁이 실종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 같은 논란이 부수적으로 정책 논쟁을 가져오는 측면이 있다는 점을 완전히 부인할 수는 없다. NLL 발언 논란의 경우 남북관계와 영토 문제에 대한 후보들 간 정책 논쟁의 장으로 연결시킬 수 있다. 또 박근혜 후보가 이사장을 지낸 정수장학회 문제를 둘러싼 논쟁 과정에서 박 후보의 역사인식과 리더십 스타일을 엿볼 수 있다.
문제는 여야 모두 지나치게 정치 공세를 취하면서 상대 후보 흠집내기에만 주력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박정희의 딸''노무현의 친구'등만 부각시키면서 소모적 정치 공방에 매몰되다 보니 정작 후보들의 정책이나 미래 비전을 둘러싼 논쟁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정수장학회의 언론사 지분 매각 추진 논란과 관련해 "필요하다면 박 후보도 청문회에 나와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았고, 새누리당은 민주당의 국정감사 보이콧 방안 거론을 겨냥해 "특전사 출신(문재인 후보)의 자해공갈단"이라는 험한 말도 서슴지 않았다.
이러다 보니 대선 정국이 '과거'대 '과거'만 충돌하는 양상으로 변질되고 있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15일 "각 후보 진영이 복지나 경제민주화 등 정책 이슈에서 차별성을 갖지 못하다 보니 상대 후보의 과거 공격을 비장의 카드로 내놓는 측면이 있다"며 "유권자들의 건전한 판단을 막는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과거 공방이 부각되다 보니 정작 '국리민복'을 좌우할 후보들의 정책 비전은 실종되고 있다는 점도 위험한 대목이다. 이정희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NLL 문제가 정책 이슈가 될 수는 있지만 분명한 출처를 거론하지 않고 의혹만 제기하는 건 문제"라며 "소모적 논쟁을 벌이기 보다는 후보들이 대북관 등을 당당하게 밝히고 토론한 뒤 유권자들의 판단에 맡기면 될 문제"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여야가 앞다퉈 두 문제에 대한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것도 실질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2000년 이후 13년 동안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국정조사안은 10건도 채 안 된다. 정치권 관계자는 "대선을 앞두고 여야 합의가 불가능한 국정조사 카드를 꺼내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결국 후보를 상처 내고 정국을 혼란스럽게 만들 뿐"이라고 말했다. 이명박정부의 마지막 국정감사장이 대선 주자를 공격하기 위한 증인 채택 문제로 걸핏하면 파행되는 데 대해서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역대 대선 결과를 볼 때 과거에 얽매인 '한방'이 대선 승리의 보증수표가 되지 못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권혁주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과거를 거론해 상대 진영에 치명적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건 단견"이라며 "대선에서 승리한 후보 대부분이 미래 비전을 승부수로 제시했었다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NLL 문제를 둘러싼 노무현 전 대통령∙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대화록 논란에 대해 "여야가 대선 전략으로 정쟁에 이용하지 말고 여야 합의를 통해 국회 정보위에서 발언 내용을 확인해 보는 것이 옳다"고 제안했다. 이 전 의장은 정수장학회 문제에 대해선 "지분 매각 추진은 법원의 지분매각금지 가처분 신청 판결이 나온 뒤에나 대선이 끝난 뒤에 하는 게 떳떳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재용기자 jy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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