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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10월 16일] 정문헌 의원이 놓치고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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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10월 16일] 정문헌 의원이 놓치고 있는 것

입력
2012.10.15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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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의 거침 없는 직설화법은 재임 중 해외순방 동포간담회장이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외교안보 참모진이 미리 작성한 원고를 토대로 하지 않고 즉석에서 생각나는 대로 말을 하는 바람에 오해가 생기고, 발언취지를 해명해야 하는 일이 잦았다. 당시 외교안보부서 주변에서는 동포간담회를 '공포 간담회'라고 부르기도 했다.

2004년 11월 칠레 아태경제협력체(APEC)정상회의 참석차 남미로 가는 도중 LA에 들러 가진 동포간담회에서 "북한의 핵이 자위수단이라는 주장은 일리가 있는 측면이 있다"는 발언도 두고두고 논란이 됐다. 한미 보수세력은 북한의 핵 개발을 정당화하고 용인한 발언이라고 강력히 비난했다. 하지만 북한이 체제 안전판으로 핵무기를 보유하고자 한다는 것은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2003년부터 시작된 북핵 6자회담도 그런 전제 하에 체제보장 및 경제지원과 핵무기를 맞바꾼다는 개념이었다.

노 전 대통령의 간담회 발언도 전후 맥락에서 살펴보면 바로 그런 뜻이었다. 그는 간담회에서 북한이 6자회담에 빨리 나와야 하며 핵은 반드시 포기해야 한다는 말도 했다. 그런데도 북핵 용인 발언이라고 몰아붙이는 것은 결과적으로 북한을 돕는 거나 다름없다. 일종의 이적행위다. 국가 간에 특정 사안이나 협상 결과를 놓고 자국에 유리하게 또는 견강부회식 해석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남북간에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노 전 대통령의 관련 발언을'핵 개발은 미국의 적대시 정책의 산물'이라는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삼고 싶었을 것이다. 즉각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을 긍정 평가하는 논평을 내놓았다. 그런 빌미를 줄 발언을 국정 최고책임자가 한 것은 경솔했다든가 잘못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명백히 북핵을 용인한 게 아닌데 용인했다고 몰아붙이는 것은 결국 북한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이 들고 나온'NLL(북방한계선) 포기 노무현-김정일 비밀대화록' 소동도 똑같다. 2007년 10월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참여정부와 진보적 학자들 사이에서 NLL 문제를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견해가 대두했던 것은 사실이다. 수시로 해상 무력충돌의 위험을 안고 있는 NLL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획기적인 남북관계 진전이나 평화정착이 어렵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별한 상황변화 없이는 NLL 문제의 전향적 해결방안 제기는 힘들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는 게 당시 안보 관계자들의 기억이다. 노 전 대통령도 이런 분위기를 잘 알고 정상회담에 임했을 것이다. 10ㆍ4선언에 포함된 남북공동어로수역이나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등의 합의는 NLL 문제의 민감성에 비춰 상당히 진전된 내용이지만 어디까지나 NLL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그런 합의에 이르는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이 NLL에 대해 어떤 얘기를 했는지는 정상대화록이 공개되지 않는 한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정 의원이 주장하는 대로 NLL 완전 포기를 명확하게 언급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남북관계 진전 과정에서 NLL 문제를 전향적으로 협의할 수 있다는 얘기는 했을 수 있다. 남북해상불가침 경계선 문제를 계속 협의한다는 것은 1992년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에도 포함돼 있다.

NLL 문제에 대한 전향적인 언급을 했다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남북관계 진전, 서해의 긴장해소 등과 연계가 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런 전후 상황과 맥락을 무시하고 지금 시각에서 무조건 노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결국 북한의 NLL 무력화 공세를 도와 주는 꼴이다.

남북관계가 일정 단계 이상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NLL 문제를 넘어서야 한다. 하지만 서해가 대결과 긴장의 바다로 되돌아 가버린 지금은 남북기본합의서와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진전된 입장도 거둬들여야 할 판이다. 이 정부에서 상당 기간 청와대 통일비서관으로 일했던 정 의원이 이런 정도의 사리도 분별하지 못하고 시대착오적인 색깔 공세를 편다면 정말 실망스럽다.

이계성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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