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앞두고 경제민주화가 화두로 떠오른 지금, 일찍부터 이 문제를 강력히 제기하며 한국 경제학을 이끈 두 학자를 다시 생각한다. 작고 20주기를 맞은 유인호(1929~1992)와 변형윤(85) 서울대 명예교수의 삶과 학문을 돌아보는 책이 나란히 나왔다. (조용래 지음)과 지인들의 추모사를 모은 , 9권으로 된 과 대화록 (대담 윤진호)가 나왔다.
두 살 차이 동년배 학자로서 두 사람은 공통점이 많다. 학문으로 일가를 이루고 행동하는 지성으로 존경을 받았다. 1980년 '서울의 봄' 시절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다가 중앙정보부 남산분실로 끌려가 고초를 겪고 4년간 해직된 것, 현실에 바탕을 둔 인간 중심의 경제를 강조한 점도 같다. 무엇보다 이들이 던진 문제 의식과 추구한 가치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일곡 유인호는 민중ㆍ민족ㆍ민주를 앞세운 비판경제학자다.'박정희 신화'를 만들어낸 고도성장의 그늘을 꾸준히 비판해온 그는 1980년 경제기본권으로 경제력 집중 방지, 계층간 균형 유지, 노동권 보호 등 7가지를 제시하며 경제민주화를 처음으로 제기한 데 이어 1987년 6월항쟁 이후의 당면 과제로 경제민주주의를 꼽았다.
그의 생애는 파란만장, 악전고투였다. 간신히 초등학교만 나와 일본으로 밀항해서 리쓰메이칸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해방공간에서는 철도노조의 구국투쟁으로, 일본에서는 한국인 차별 반대 투쟁으로 수감됐고, 1980년 민주화운동으로 다시 옥고를 치렀다. 광주의 국립5ㆍ18민주묘지에 누운 그의 묘비명은 이렇다. "민족경제의 수립과 민주 사회의 건설을 위해 열정을 불태운 경제학자 여기에 잠들다."
학현 변형윤은 '학현학파의 창시자'라는 말 외에 '진보경제학계의 대부' '대쪽 선비'등으로 불린다. 대표작으로 꼽히는 (1980), (1986), (1989) 등에서 그는 경제 발전의 핵심 가치로 평등과 분배의 정의, 균형 발전, 자립 경제를 제시하고 이 세 가지 가치가 실현되는 과정을 경제 민주화로 파악했다. 그는 한국 시민운동의 효시라 할 수 있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초대 공동대표로서 경제정의와 경제민주화를 위해 노력했다.
경제학자로서 그의 목표는 '한국 경제의 현실과 밀착된 한국적 경제학의 정립'이었다. 1992년 정년퇴임할 때까지 37년간 서울대에서 가르치며 서울 상대를 한국 최고의 인재의 산실로 키웠다. 1950년대 후반기에 경제수학, 통계학, 수리경제학, 계량경제학을 국내에 도입해 새로운 학문을 일으켰고, 1960년대에는 경제발전론과 경제변동론의 최신 동향을 소개했다. 이번에 나온 대화록의 제목 '냉철한 머리, 따뜻한 가슴'은 그가 평생 연구한 영국 경제학자 앨프리드 마셜의 경구이자 학현의 좌우명이기도 하다.
여든을 훌쩍 넘긴 지금도 그는 매일 연구소에 나와 글을 읽고 쓴다. 전집과 대화록의 출판기념회가 16일 오후 5시 30분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서 열려 후학들이 스승에게 존경을 바친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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