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미국 연방 상원의원을 지내며 '역대 최고의 선량' 중 한 명으로 꼽혔던 알렌 스펙터 전 의원이 82세의 나이에 비호지킨 림프종 합병증으로 14일 별세했다. 당파에 치우치지 않은 소신 행동으로 미국 양대 정당의 간극을 줄이고자 했던 그의 죽음과 함께 미국 정치권에서 중도파의 시대가 종언을 고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시사주간 타임은 이날 스펙터 전 의원의 죽음을 '공화당 중도파의 멸종'으로 평가하며 "갈수록 중도파가 사라지는 미국 정치권에 그의 죽음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보도했다. 타임은 앞서 2006년 스펙터 전 의원의 독자 행보를 높이 평가해 그를 '10대 상원의원'으로 선정한 적이 있다.
청년 시절 민주당원이었던 스펙터 전 의원은 1966년 공화당으로 당적을 바꿨다. 80년 공화당 소속으로 펜실베이니아주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됐고 이후 네 차례 더 의원직을 수행했다. 그는 공화당원이었으나 공화당과 민주당의 당론을 넘나들며 이슈 별로 다른 행보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 87년 같은 당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지명한 로버트 보크 대법관 후보자를 낙마시키는데 앞장섰고 99년 빌 클린턴(민주당) 대통령 탄핵 사건에서는 동료 의원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탄핵 반대 쪽에 섰다. 버락 오바마(민주당) 대통령 취임 이후에는 오바마의 경제살리기 법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그러나 양당정치의 경계선상에서 소신을 지키고자 했던 스펙터 전 의원의 실험은 2009년 시작된 티파티 운동(보수 유권자 운동)으로 공화당이 급격히 보수화하면서 실패로 막을 내린다. 오바마에 찬성표를 던진 그는 당내에서 '상종해선 안될 인물'로 낙인 찍혔고 어쩔 수 없이 43년 만에 다시 민주당으로 적을 옮겼다. 그를 '철새 정치인'이라 평가하는 이도 있지만 미국 언론은 역사상 가장 치열한 대결로 치달은 양당의 극단적 당파 대결의 희생양으로 그를 평가하고 있다.
한국전 참전용사 출신인 스펙터 전 의원은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사건을 조사한 워렌위원회에도 참여했다. 그는 당시 '하나의 총알 이론'을 제시하며 리 하비 오스왈드가 케네디 대통령의 단독 살해범이라는 위원회의 결론을 뒷받침했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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