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가입국보다 더 많은 나라에서 뮤직비디오를 다운받아 보았다는 전세계적 열풍에도 불구하고 싸이의 '강남스타일' 국내 음원 저작권료 수입이 고작 3,600만원이라고 해서 화제가 됐다. 국민들이 300만번쯤 내려받고, 3,000만번쯤 들은 초대박의 수입이 이 정도다. 싸이야 대신 CF 모델 수입으로 40억~50억원을 거둔다지만, 웬만한 성공에 그치는 다른 뮤지션들은 고작 몇십 만원을 손에 쥐고 헛웃음을 짓는다.
우리나라의 음원수입 분배구조는 세계적으로 유례 없이 왜곡돼 있다. 미국 음원시장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애플 아이튠즈는 보통 한 곡 다운로드에 1,000~1,500원을 받아 이중 30%를 챙긴다. 나머지가 작사·작곡자와 제작자 등 노래를 생산한 이들에게 돌아간다. 우리나라는 가격 형성부터 엉망이다. 국내 음원시장의 절반 이상을 점유하는 멜론은 월 3,000원에 무제한 듣기 같은 정액제 상품을 팔기 때문에, 이용자가 많은 곡을 들을수록 음악 생산자에게 돌아가는 단가는 낮아진다. 한 곡 스트리밍에 평균 0.2원, 다운로드에 10.7원이라는 계산이 이렇게 나온다. 애초에 유통사가 챙기는 몫도 미국보다 높은 57.5~40%다. 부가상품인 벨소리나 컬러링은 SK텔레콤 KT 등 통신사의 몫이 일반적으로 더 높다. IT 강국을 외쳐온 정부가 컨텐츠 보호에는 손을 놓은 결과다.
소비자들은 값싸게 음악을 즐긴다고 볼지 모르나 사실은 왜곡된 시장의 피해자다. 음악생태계가 더 빈약해졌기 때문이다. 시장의 중심엔 연기도 하고 개그도 하는 아이돌을 키우는 몇몇 대형 제작사들이 있고, 외곽엔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잇는 인디 뮤지션들이 남았다. 그러나 과거 우리 대중음악을 풍부하게 했던 많은 실력파 뮤지션들은 종적을 감췄다. 1980~90년대 음반 몇 만장만 팔아도 음악생산이 지속가능했던 시절이 막을 내린 탓이다. 서태지와 아이들보다 재즈보컬그룹 낯선사람들을 사랑했던 나 같은 소비자는, 아이돌과 인디만 남은 음악시장에서 점점 멀어졌다.
한 대중음악 제작자는 "정부가 K팝 지원한다며 헛돈 쓰지 말고, 음악생산자가 생존 가능하도록 시장을 살려야 한다. 음악을 팔아 먹고 살 수 있는 시장이라면 자기만의 세계가 있는 뮤지션들이 몰려 다양한 음악이 쏟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유통사의 분배율을 낮추고, 덤핑 정액제를 금지하는 등 음악생산자의 생존을 보장하기 위한 시장 개혁이 필요하다. 애플이 당장 손해를 보면서도 음원판매액의 70%를 음악생산자에 돌려주는 것도, 궁극적으로 음악 생산자와 공존하고 번창해야 더 많은 소비자를 끌어들여 산업을 키울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똑같은 논리를 요즘 화두인 경제민주화에도 적용할 수 있다. 일각에선 경제민주화 논의를 선거철 포퓰리즘이라고 몰아붙이는데, 이는 대기업 자체를 악으로 보는 것과 똑같이 문제 있는 시각이다. 음악시장을 개혁하자고 하면 SK텔레콤의 자회사인 멜론을 적대시하는, 대기업 때리기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삼성과 같은 대기업은 앞으로도 세계 경쟁에서 눈부실 성과를 낼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산업구조의 버팀목이 될 중소기업이 고사하고, 중산층의 자리를 빈곤 자영업자와 비정규직 근로자가 대체해버리면 내수시장도, 성장잠재력도 함께 사라질 것이다. 지금 경제민주화 논의를 하지 않는다면 걱정해야 할 것은 대기업의 미래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미래다. 싸이는 있지만 업계는 피폐한 대중음악계가 우리나라 전체의 현실이 될 수도 있다.
김희원 사회부 차장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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