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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카에 빠진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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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카에 빠진 대한민국

입력
2012.10.14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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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서울 청계천 세운상가. 줄지어 늘어선 3.3㎡ 남짓의 작은 가게 유리창에서 '몰카' '도청' '위치추적'이라는 글씨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가게 앞을 서성이자, "찾는 게 있느냐"며 40대로 보이는 남성이 다가왔다. "몰카(몰래카메라) 있냐"고 말하자, 손짓을 하며 가게 안으로 이끈다. 고가 수입차 상표가 적힌 차량용 키, 메탈 소재의 시계, 어디서든 흔히 볼 수 있는 라이터, 만년필까지 다양한 제품으로 위장된 카메라들을 내보여준다. 그는 "일반인은 구별하기 힘들다"며 "가격도 10만원대로 부담 없이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초소형 영상장비(일명 스파이캠)가 이처럼 아무 제재 없이 대량 유통되면서 사생활 침해, 성범죄나 절도 등 범죄에 악용되는 부작용이 불거지고 있다. 하지만 방송통신위원회와 등 관련 기관은 몰카 판매 자체를 단속할 근거가 없다며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몰카 장비는 인터넷은 물론 서울 세운ㆍ용산상가 등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서울시 시범점포'라는 간판이 달린 세운상가의 한 상점 주인은 "150만원 정도 하는 줌렌즈만 붙이면 20~30m 떨어진 거리에서도 촬영이 가능하다"며 "보따리상을 통해 일본에서 직수입 되기 때문에 품질만큼은 내가 보증한다"고 장담했다. 용산상가의 한 몰카 판매 업주는 "대학생부터 70대 노인들까지 (몰카를) 찾는 사람도 다양하다"고 설명했다.

몰카에 쓰이는 카메라렌즈는 쌀알 크기만큼 작지만, 화질은 웬만한 캠코더만큼 뛰어나다. 용산상가의 한 점원은 "10만원대 저가 몰카도 300만화소 이상 사양으로, HD급 정도로 화질이 선명하다"며 즉석에서 촬영한 영상을 시연하기도 했다. 손톱 크기만한 저장 장치만으로도 1시간 이상 분량의 동영상 저장이 가능하다. 또 다른 가게에서는 "배터리만 추가하면 10시간 이상 촬영도 가능하다"며 "비용만 추가하면 원하는 모양으로 주문제작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렇게 몰카를 손쉽게 살 수 있게 되면서 몰카를 이용한 범죄도 진화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광주의 한 아파트 현관문 천정에는 화재감기지로 위장한 몰카가 발견됐다. 여기에는 주민이 현관문 번호키를 누르는 장면이 선명하게 녹화돼 있어, 경찰은 누군가 절도를 위해 설치한 것으로 보고 수사에 나섰다. 앞서 4월에는 강모(35)씨가 충북 청주시 일대 아파트 10여 곳을 돌며 몰카를 이용해 현관문 비밀번호를 알아낸 뒤 2,500만원어치 금품을 훔치기도 했다. 백화점이나 열차 등 공개된 장소에서 여성 신체를 몰래 촬영하는 범죄 역시 몰카 때문에 기승을 부리고 있다.

경찰은 몰카가 명목상 영상촬영 장비인 만큼 사고파는 것 자체를 단속할 근거가 없어 애를 먹고 있다. 몰카에 주로 쓰이는 스파이캠은 방통위 산하 국립전파연구원의 적합성 인증만 받으면 합법적으로 유통이 가능하다. 방통위 관계자는 "제품을 악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지만 판매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고 밝혔다. 한 경찰 관계자는 "밀수된 일부 몰카 장비의 경우 관세청의 적발 대상이지만 이밖에는 경찰이 단속할 근거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동현기자 na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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