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 대낮에 한국 행정의 심장인 서울 광화문 정부중앙청사가 뻥 뚫렸다. 14일 화염병을 든 60대 남자가 가짜 출입증으로 정부중앙청사 안으로 들어가 직원들이 있는 사무실에 불을 지른 뒤 투신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경찰과 청사 방호원이 두 차례에 걸쳐 출입증 검사를 하도록 돼 있지만 소용 없었다. 특히 행정안전부가 6억원을 들여 설치한 전자신분증 인식기는 꺼져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부실한 정부청사 출입 관리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정부중앙청사 어떻게 들어갔나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이날 오후 1시20분쯤 정부중앙청사 후문을 통해 청사 안으로 들어갔다. 통상 후문 입구에는 의경 3명이 출입자의 신원과 출입증을 확인하도록 돼 있지만 김씨는 옛 정부청사 출입증과 비슷하게 생긴 위조 출입증을 슬쩍 보여준 뒤 손쉽게 통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청사 건물 안에는 출입자와 소지품 등을 확인하는 검색대가 있었지만 작동되지 않았다. 청사 관계자는 "평일에는 경찰이 출입자와 휴대품을 검색하지만 주말은 예외"라고 말했다. 김씨는 검은색 배낭 안에 페인트통과 시너, 휘발유 등 인화 물질을 갖고 있었지만 전혀 제지를 받지 않고 청사 내부로 들어갈 수 있었다.
다시 청사 로비와 엘리베이터 사이의 출입구에도 전자 신분증 인식기가 있다. 여기에 출입증을 대면 문이 열리도록 돼 있지만 이것도 제대로 운영되지 않았다. 청사 관계자는 "평소에도 얼굴을 아는 직원이나, 옛 출입증을 갖고 있어 단말기 작동이 안될 경우에는 출입증만 확인되면 문을 열어준다"고 말했다. 심지어 김씨가 들어설 당시 출입구 3개 중 1개는 아예 열려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공무원은 "주말에는 에너지 절감을 이유로 인식기를 꺼 놓고 신분증 제시와 방문일지 작성만으로 출입을 관리한다"며 "방문일지도 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렇게 후문으로 청사에 들어선 후 청사 18층 교육과학기술부 1808호 교육정보기획과 사무실에 불을 지른 뒤 창문으로 뛰어내릴 때까지 20여분 동안 단 한 차례도 제지를 받지 않았다.
은행원 출신, 우울증 앓아
김씨는 우울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가 정부중앙청사에 들고 간 배낭에서는 분당의 한 정신병원 명칭이 적힌 약 봉지가 나왔다. 경찰 관계자는 "김씨의 지인으로부터 김씨가 오랫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아 왔다는 진술을 받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전직 은행원 출신으로 확인됐다. 김씨의 가족은 경찰 조사에서 "한일은행을 다니다 IMF 사태 직후였던 1998년 상업은행과 합병하면서 은행 일을 그만뒀다"고 말했다. 퇴직 후 부인과 함께 생활하던 김씨는 현재 경기 용인시에 아들과 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의 한 지인은 "평소 말이 없고 동네 사람들과도 왕래가 없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김씨 주변 인물과 목격자 등의 진술을 바탕으로 정확한 사건 경위를 수사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정부청사의 옛 출입증과 비슷한 출입증을 지니고 있었던 점, 정장을 입고 있었던 점 등을 볼 때 김씨가 범행을 미리 계획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왜 정부중앙청사, 교과부 사무실을 범행 장소로 택했는지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동현기자 nani@hk.co.kr
손효숙기자 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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