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지난 7일 우리 군 탄도미사일 사거리 제한을 300㎞에서 800㎞로 확대하는 것 등을 골자로 한 '새 미사일 정책 선언'을 발표했다. 3년여에 걸쳐 미국과 협상을 벌인 결과다. 미국이 제시한 지침 성격의 이 약속이 억누르고 있었던 것은 비단 미사일 성능뿐만이 아니다. 무인항공기(UAVㆍUnmanned Aerial Vehicle)의 탑재 장비 중량 제한을 500㎏에서 2,500㎏(2.5톤)으로 대폭 상향한 것은 사실상 이번 지침 개정의 최대 성과로 평가된다. 정찰 장비는 물론 유도미사일 등 공격 무기를 무인기에 매다는 것도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현대전에서 무인기가 유용한 무기로 인정 받기 시작한 것은 1982년 이스라엘ㆍ레바논 전쟁 때부터다. 당시 시리아군은 이스라엘군의 진격로였던 베카 계곡에 촘촘한 방공망을 구축하고 있었다. 이스라엘 공군은 자체 개발한 무인기 '스카우트(척후병)'를 적 상공으로 날려 보냈다. 시리아군의 미사일 발사를 유도해 적의 방공망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이스라엘은 시리아군 레이더 기지를 80% 넘게 파괴할 수 있었고 일방적인 승리를 가져왔다.
실전에서 정찰과 공격 용도의 무인기를 적극 도입한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은 91년 이라크 전쟁에서 무인정찰기를 활용해 재미를 봤다. 카메라를 단 무인기가 촬영한 목표물과 방공망의 영상을 자국의 공격용 헬기 조종사에게 재빨리 제공해 이를 파괴토록 했다. 2001년 아프가니스탄전 때는 예멘 등에서 무인공격기(드론)로 알 카에다 지휘부를 직접 폭격했다.
이처럼 무인기는 아군의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고 오염된 지역에서 위험한 임무를 장시간 수행할 수 있는 장비다. 세계 각국이 앞다퉈 무인기 개발에 뛰어들고 있는 이유다. 2000년대 초만 해도 50대 가량의 무인기만 갖고 있던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 선포 후 10년 새 무인기 보유 대수를 7,500여대까지 늘렸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 모로코,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등 중동과 북아프리카 국가들에 무인기를 수출하기도 한다.
우리 군도 무인기의 효용성은 진작 알아챘다. 91년부터 10년여 간 자체 개발을 추진, 2000년 국산 무인정찰기 '송골매'(RQ-101)를 완성했다. 미국, 이스라엘, 프랑스, 영국, 캐나다 등에 이어 세계 10번째다. 2002년 육군 군단급에 실전 배치된 송골매는 날개 길이 6.4m, 몸체 길이 4.8m에 탑재 중량은 290㎏이며 시속 185㎞가 최대 속도다. 높이 4,500m(4.5㎞) 고도에서 약 6시간을 비행하며 전자광학ㆍ적외선 카메라로 100여㎞ 떨어진 적진 상공에서 적 동향을 알려줄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운용 고도는 1~2㎞에 불과해 저고도 정찰 정도만 가능하다. 중ㆍ고고도 정찰기보다 체공 시간이 짧아 정찰 범위 역시 좁다.
군은 송골매가 북한의 도발 징후를 감시할 능력이 취약한 것으로 판단, 지난 3월 국방과학연구소(ADD) 주관으로 송골매를 대체할 차기 군단급 무인정찰기 체계 개발에 착수했다. 새 군단급 무인정찰기 개발에는 1,070억원의 예산이 편성될 예정이며, 군은 2017년까지 개발을 완료해 2020년쯤 실전 배치한다는 계획이다. 일단 이 무인기의 모델은 미 공군의 무인기 '프레데터'(MQ-1ㆍ약탈자). 프레데터는 최고 상승 고도가 7.6㎞에 이르고 장비와 무기를 340㎏까지 실을 수 있다. 정찰용이지만 49㎏ 무게의 레이저 유도 공대지 미사일 '헬파이어'(사거리 10㎞) 2발을 운용할 수 있다. 우리 군의 차기 군단급 무인정찰기에도 2발의 헬파이어급 미사일이 장착될 예정이다. 긴급 표적 타격을 위해서다. 군은 또 국산 무인정찰기 전력화가 마무리되기 전 8년여 간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내년부터 2015년까지 360억원을 투입, 육군 전방군단에서 운용할 대형 전술급 무인정찰기 구매도 추진키로 했다.
현재 최고 성능의 무인정찰기는 20㎞ 고도에서 비행하는 고고도 무인기다. 미국이 2000년 개발해 현재 운용 중인 '글로벌 호크'가 대표적이다. 글로벌 호크는 고도 19.8㎞ 상공에 최대 35시간 떠 있으면서 첨단 합성영상레이더(SAR)와 전자광학ㆍ적외선감시장비(EO/IR)로 원거리 정찰이 가능하며 지상에 있는 30㎝ 크기 물체도 식별할 수 있는 첩보위성급 전략무기다.
우리 군은 글로벌 호크 구매를 위해 미 정부와 가격 협상을 벌이고 있지만 아직 미 의회의 수출 승인을 받지 못했다. 4,000억원에서 최근 9,400억원까지 치솟은 대당 가격도 협상을 어렵게 하는 요소다. 군 관계자는 "글로벌 호크 탑재 중량은 2,250㎏에 달하는데 이번 무인기 탑재 중량 확대가 가격 협상에도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가격이 비싸 도입이 어려워질 경우 우리가 직접 개발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만 고고도 무인정찰기를 자체 개발하면 실전 배치가 늦어지고 해외 구매에 따른 기술 이전 효과를 누릴 수 없는 만큼 구매와 개발을 병행할 필요도 있다고 이 관계자는 설명했다.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 글로벌 호크 구매비용을 돌려 고도 10~12km의 중고도 무인기를 자체 개발할 가능성도 있다. 이미 중고도 무인기에 대한 연구는 수년 전부터 이루어져 온 터여서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는다. 미국이 2000년대 실전 배치한 '리퍼'(MQ-9ㆍ엔진 900마력)급 한국형 무인공격기 개발 전망도 나온다. 한 국책연구소 전문가는 "현재 중고도 무인기 개발 역량은 이미 국내에 확보돼 있다"며 "2006년부터 개발을 추진해온 국산 중고도 무인기를 재설계하는 방법으로 리퍼급 공격무인기를 수년 내 개발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권경성기자 ficci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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